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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CENTURY STUDY |
2023년 10월 1일
레위기 23장 39-44절 [39]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새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40]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 할 것이라 [41]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42]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44] 모세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마태복음 21장 6-11절 [0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0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0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0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쑤코트 - 초막절
로쉬 하 샤나에서 15일이 지나면 쑤코트, 즉 초막절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23장에서 봄에는 페씩, 즉 유월절을 지키고, 여름에는 샤브오트, 즉 오순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쑤코트, 즉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을 토라의 3대 절기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이지요.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를 영어로는 God's Appointed Time이란 말도 쓴답니다. 유월절에는 하나님께 곡물의 첫 이삭을 제사장에게 갖다 줍니다. 아울러 일년 된 숫양도 바칩니다. 오순절에는 떡 두 개를 요제로 바치고 아울러 일년 된 숫양 일곱 마리와 어린 수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화제로 드립니다. 그런데 초막절에는 아름다운 나무 실과, 종려나무 가지, 무성한 나무 가지, 시내 버들을 취하여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 하고 초막절 7일 동안 초막에 머무는 것이 전부 입니다. 하나님 앞에 동물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일이 없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에 가보면 사람들이 위의 사진과 같은 아르바 미님, 즉 네 가지 식물을 준비하여 예배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초막절을 지키셨지요. 그때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겉옷과 함께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폈다고 합니다. 이 나뭇가지가 바로 초막절의 네 가지 식물, 즉 아르바 미님이 되겠습니다.
드라쉬 (경건한 신학자가 되거나 경건한 신학자를 돕는 자가 되라.) 1) 초막절에 무엇을 취하여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 합니까? 2) 초막절에 초막에 들어가서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 어째서 초막절에는 하나님 앞에 동물의 희생 제물을 바치지 않습니까?
2023년 9월 10일
마태복음 5장 6-10절 [0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0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0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0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로쉬 하 샤나
지금 이스라엘에 가보면 새해를 맞았다고 축제를 벌이는 등 요란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이 새해지? 아직 9월밖에 안됐는데... 하지만 이것이 이스라엘의 전통인 걸 어쩌겠어요? 바벨론 시대부터 지켜 온 전통이랍니다. 2500년이나 되었지요. 로쉬 하 샤나는 모세가 두 번째로 십계명판을 받고 호렙산을 내려왔던 때와 관련이 있습니다. 모세가 내려왔던 때는 욤 키푸르인데 그보다 열흘 전 일몰에 유대인 지도자들은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불면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비하라고 알려 줍니다. 그래서 아흐레 동안 자기가 죄를 지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용서를 구하고 또 용서를 받습니다. 그래야 욤 키푸르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범한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히브리어로 새해를 '로쉬 하 샤나'라고 합니다. 일년의 '머리'란 뜻이지요. 그래서 스페인에서 살던 유대인들, 즉 스파르딤은 생선의 머리를 먹는 전통을 가졌답니다. 생선의 머리를 먹으면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독일에서 살던 유대인들, 즉 아쉬케나짐은 생선의 머리 대신 닭을 먹는다고 하지요. 로쉬 하 샤나에는 둥근 할라빵과 꿀에 찍은 사과와 석류를 먹습니다. 한 해가 둥글둥글 잘 돌아가라는 의미, 달콤한 한 해가 되라는 의미, 석류처럼 번성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보름 후에 오는 초막절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초막을 만들어야 합니다. 초막은 대개 아빠와 아들이 만들지요. 물론 딸도 치장을 하고 그림을 붙이고... 등을 해야 합니다.
드라쉬 (경건한 신학자가 되거나 경건한 신학자를 돕는 자가 되라.) 1) 로쉬 하 샤나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데 유대인들은 왜 지키나요? 2) 로쉬 하 샤나와 욤 키푸르의 관계에 대해 알아 봅시다. 3) 로쉬 하 샤나의 음식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2023년 9월 10일 시편 137편 1-3절 [0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0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0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마태복음 5장 5절 [0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땅을...
이스라엘 백성은 본래 하나님께서 주신 에레쯔 이스라엘, 즉 이스라엘을 위한 땅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에레쯔 이스라엘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숭배를 하여 하나님의 미움을 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군대에 의해 바벨론으로 잡혀 오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포로였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군대가 그들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미움을 사면 원수들의 노리개가 되고 말지요. 다행히 바벨론 군대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으로 돌아갈 날을 손 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 즉 에레쯔 이스라엘을 시온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시온은 오늘날 예루살렘의 남쪽 지역을 의미하지만 어쨌든 그때는 에레쯔 이스라엘 대신 쓰이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바벨론에 잡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에레쯔 이스라엘에서 우상숭배 했던 죄를 하나님께 회개 했습니다. 그리고 애통해 했지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그들의 달력에 나타내고 매년 이 일을 다시 생각하고 다시 생각했습니다. 즉, 10월인 탐무쯔 17일부터 11월인 아브 9일까지 3주간 애통의 기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11월인 아브 10일부터 12월인 엘룰을 지나 다시 1월인 티슈리 1일까지 7주간 위로의 기간을 갖는 겁니다. 그리고 11월인 엘룰의 25일부터 창조의 6일을 갖습니다. 그러면 26일은 창조의 2일이 되고 27일은 창조의 3일이 되고 티슈리 1일은 창조의 6일이 되지요.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창세기 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놀랍게도 위로의 7주간을 창조의 여섯 번째 날로 끝내게 만들었지요. 애통과 위로의 결과는 새로운 창조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새롭게 하셔서 바벨론 포로의 생활을 면하고, 시온, 즉 에레쯔 이스라엘로 돌아가서 다시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기도를 들어 주셨지요. 그리고 결국 돌아가서 성전을 짓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해 온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온유란 가난하고 상처받은 심령을 소유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땅을 다시 받게 되었지요. 예수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지요.
드라쉬 (경건한 신학자가 되거나 경건한 신학자를 돕는 자가 되라.) 1) 창세기 1장을 읽으면서 창조의 1일부터 7일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적어 봅시다. 2) 애통의 3주간과 위로의 7주간에 대해 정리해 봅시다. 3) 하나님의 위로는 새로운 창조로 끝난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2023년 9월 3일 마태복음 5장 5절 [0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땅을?
예수님은 여덟 가지 복들 가운데 세 번째 복으로 “온유하면 땅을 기업으로 얻는” 복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기업이란 단어는 헬라어 원문에 없는 말로 이해를 돕기 위해 번역자가 차용한 단어로 보입니다. 헬라어 원문은 '온유'를 따뜻하고 부드럽고 친절하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현대 히브리어 번역을 보면, 따뜻하고 부드럽고 친절하다는 의미 보다, 가난하다고 상처 입다란 의미를 더욱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현실을 한번 봅시다. 가난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땅을 많이 차지 하나요? 아니면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럽고 친절한 사람들이 땅을 많이 차지 하나요? 사실 둘 다 아니지요. 우리가 봐온 지주들을 보면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예수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이것은 하나님께로 부터 가나안 땅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해야 풀리는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수 백 년 동안 가나안 땅을 떠나서 살았습니다. 힘이 센 나라가 그들을 밖으로 내쫓았지요. 그래서 그들은 밖에서 가나안 땅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바벨론 강가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다고 하지요.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온유하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히브리어로 말하면 가난하고 상처 입은 자가 되라는 것이지요. 그래야 따뜻하고 부드럽고 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게 온유한 자가 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도와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 유대인들은 다윗 시대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프라테스에서 나일까지 넓은 땅을 얻기 위해 무기를 만들고 병사들을 훈련 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전혀 다른 방법을 말씀 하셨습니다. 온유한 자가 되라고! 가난하고 상처 입은 자가 되라고! 그래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가나안 땅을 돌려 주신다고...
드라쉬 (경건한 신학자가 되거나 경건한 신학자를 돕는 자가 되라.) 1) 우리 말 온유는 어떤 뜻입니까? 2) 헬라어와 히브리어는 온유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3) 땅은 누가 주는 겁니까?
2023년 8월 27일 마태복음 5장 4절 [0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과 위로 3
예수님이 말씀하신 여덟 가지의 복들, 즉 팔복은 모두 중요하지만, 그 중 두 번째 복인 애통하는 자를 위한 위로는 예배와 관련이 있어서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데에 있어 어떤 제한도 없습니다. 물론 코로나가 만연했을 때는 좀 다르긴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몇 명이 와도 제한이 없이 예배를 드립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독재자 시진핑이 불도저를 동원해서 교회 건물을 밀어 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가 있어야 할 곳에 자기 사진을 붙였다고 하지요. 자기를 하나님 처럼 섬기라는 말이지요. 이런 곳에서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면 아주 위험할 겁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아벨'로 표현하셨습니다. 가인의 동생 헤벨을 가리키는 말이 헬라어 번역 이후로 아벨이 되었답니다. 아벨, 아니 헤벨은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다가 형 가인의 질투를 사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게 애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헤벨을 위로하시겠지요.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지 않겠다고 하신 적도 있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너무 집요하게 우상숭배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예배를 받지 않으시겠다고 예루살렘 성전을 없애 버리셨습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 예배가 아닌 회당 예배와 가정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귀하게 보셨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두 번째 성전도 짓게 하셨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성전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셨습니다. 종교인들이 성전을 이용해서 나쁜 짓들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부정적인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전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까지 죽이는 무도한 자들이었지요. 이때 예수님은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셨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셨습니다.
드라쉬 (경건한 신학자가 되거나 경건한 신학자를 돕는 자가 되라.) 1) 애통이 히브리어로 아벨이 된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2)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애통하는 자들을 위로해 주셨습니까? 3) 지금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2023년 8월 20일 마태복음 5장 4절 [0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과 위로 2
우리는 지금 8월을 맞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이스라엘이란 나라에 가면 8월이라고도 하지만 또 '엘룰' 월을 맞았다고도 합니다. 그 곳에 사는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히브리 달력에 따르면 지금 엘룰 월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유대인들에 따르면 엘룰 월의 '엘룰'이란 말은 아가 서 6장 3절 상반절의 말씀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이러 합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이 말씀을 히브리어로는 "아니 르도디 브로디 리."라고 합니다. 이 문장에서 앞 글자만 따오면 알렢 라메드 바브 라메드가 되는데 이걸 붙여 읽으면 '엘룰'이 되지요. 유대인들은 이런 식으로 자기들의 생각을 표시하곤 합니다. 성경을 이용한 좋은 행동입니다. 결국 엘룰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신다는 뜻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는 물론 우리도 들어 있습니다. 우리도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포함이 된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게 하셨지요. 엘룰 월에는 모두 29일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29일은 유대인들이 지키는 위로의 7주간이 포함 됩니다. 위로의 7주간을 설명하려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야기까지 해야 하는데 오늘은 생략하도록 하지요.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엘룰 월 25일부터 티슈리 월 1일까지 엿새를 창조의 6일이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 하시되 일곱 가지로 위로 하시는데 그 마지막이 창조입니다. 창조는 새로운 창조, 즉 회복을 의미하지요. 이에 대해서는 차차 하나씩 공부해 가리로 해요.
드라쉬 (경건한 신학자가 되거나 경건한 신학자를 돕는 자가 되라.) 1) 유대인들이 해석하는 '엘룰'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2) 탐무즈 월 17일부터 아브 월 9일까지 '애통의 3주간'이라 하고 아브 월 10일부터 티슈리 월 1일까지 '위로의 7주간'이라 합니다. 기억해 둡시다. 3)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마지막으로 위로 하시는 방법이 회복입니다. 회복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2023년 8월 6일 마태복음 5장 3-4절 [0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0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함, 그리고 애통함에 대한 복들
공생애 첫 해, 오순절이 오자, 예수님은 가버나움 뒷산으로 제자들을 모우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오순절이 오면 십계명에 대한 공부를 합니다. 예수님도 당시에는 토라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랍비였습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에 대한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산상수훈이라고 하는 것은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십계명 강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계명보다 먼저 팔복에 대해 말씀 하셨습니다. 팔복을 살펴 보면 십계명에 관련된 말씀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팔복을 산상수훈의 서론으로 삼으신 것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때는 예수님께서 40일 금식 기도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는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팔복은 40일 금식 기도를 하면서 예수님이 무엇을 생각하셨나… 하는 점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오늘은 여덟 가지 복들 가운데서 첫 번째 복과 두 번째 복을 다루겠습니다. 팔복 중 첫 번째 복은 천국을 소유하는 복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받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말 번역을 다시 한번 더 읽어 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저는 헬라어 성경을 현대 히브리어로 번역한 것을 꺼내 봤습니다. 그리고 팔복의 첫 번째 부분을 찾았습니다. "아슈레이 아니에이 하 루아흐, 키 라 헴 말르쿠트 하 샤마임.”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단어가 되는 심령… 이것을 헬라어는 ‘프뉴마’로 번역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어는 하 루아흐’로 번역합니다. 프뉴마는 별 뜻이 없는 번역어에 지나지 않지만 하 루아흐는 아주 중요한 토라적 의미가 있습니다. 하 루아흐는 우리가 하나님을 느끼는 부분을 말합니다. 우리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입으로는 맛을 느끼지요. 코로는 냄새를 맡고요. 그리고 어떤 부분으로는 이성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 처럼 우리 몸은 하나 하나 뭔가를 느끼고 알게 되어 있습니다. 하 루아흐는 하나님을 느끼고 알게 되는 부분 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것을 만들어 우리 몸 안에 두셨지요. 이게 하나님과 교감하여 우리를 영생으로 가게 합니다. 영생… 우리의 궁극적인 희망이지요. 히브리어로 ‘하야’ 헬라어로 ‘조에’ 라틴어로 ‘비타’ 영어로 ‘라이프’라 합니다. 하지만 하 루아흐가 막혀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신론자나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가 바로 그런 자들이지요. 눈이 막혀 있으면 장님이라 하고 입이 막혀 있으면 벙어리라 하지요. 하 루아흐가 막혀 있으면 무신론자 또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라 합니다. 이들은 영생에 대한 소망이 없지요. 이들은 성경을 공부해도 영생은 빼고 공부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스스로 삭제해 버리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이지요. 이들은 하 루아흐, 즉 심령은 허망하다는 말을 내뱉곤 합니다. 그래서 하 루아흐에는 헛것이란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1828년 남부 러시아에서 태어난 레프 톨스토이는 이후 82년을 살면서 많은 작품을 썼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의 대문호가 되었지요. 하지만 작품성에 있어서는 도스토예프스키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들의 작품을 읽어보면 금방 나오는 평가입니다. 톨스토이는 장편도 많이 썼지만 단편도 많이 썼습니다. 단편 중에 ‘두 노인’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러시아 어떤 마을에 에핌이란 사람과 엘리사란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에핌은 욕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매사에 그리스도인 다운 처신을 하면서 맺고 끊는 게 분명 했기 때문에 그는 부자로 살았습니다. 이에 비해 엘리사는 보드카와 코담배를 끊지 못해 괴로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지런히 벌을 키워 꿀을 따서 나름대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엘리사… 그 이름대로 그는 대머리였습니다. 불빛 밑에서는 엄청 밝은 빛을 내었습니다. 두 사람은 나이가 비슷하고 생각하는 바도 같아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나이가 60이 넘자 죽기 전에 예루살렘 순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순례는 기독교인의 중요한 의무 가운데 하나 였습니다. 하지만 부자인 에핌에게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엘리사의 강권으로 에핌은 일을 잠깐 멈추기로 했습니다. 엘리사는 양봉 일을 옆집 사람에게 넘겼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100 루블의 돈을 마련해서 성지 순례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에핌은 비상금을 챙겼을 겁니다. 그들은 자기 마을에서 우크라이나에 있는 오데사 항구까지 800킬로미터를 걷기로 했습니다. 오데사에 가면 흑해를 지나 콘스탄티노플을 지나 알렉산드리아에 들렀다가 욥바로 가는 배가 있었습니다. 욥바에서는 60킬로미터만 걸으면 예루살렘… 성지 순례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아서 배는 사흘에 한 번 출항 했다고 합니다. 배삯은 왕복이 40루블이었습니다. 오늘날 루블화는 그리 값이 나가지 않지만 톨스토이 시절에는 요즘 달러화 처럼 값이 많이 나갔나 봅니다. 이 두 사람은 오데사를 향해 열심히 걸었습니다. 하지만 체구가 작고 몸이 약한 엘리사는 기골이 장대하고 기운이 넘치는 에핌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엘리사는 어떤 마을에 이르러 좀 쉬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엘리사는 에핌에게 농가에 들어가 물 좀 얻어 마시고 곧장 뒤 따라 갈테니 먼저 가라고 했습니다. 에핌은 오데사를 향하여 가고, 엘리사는 한 농가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농가에서는 기근과 전염병으로 한 가족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노모와 중년 부부, 그리고 어린 딸과 아들… 그들은 드러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우물을 찾아 물을 길어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먹을 빵으로 수프를 만들어서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엘리사가 사흘 동안 그들을 보살피자 그들은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사는 그들의 땅이 저당 잡혀 있어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엘리사는 그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저장 잡혔던 땅을 찾아주고, 말과 수레와 소를 사주었습니다. 100루블을 헐었더니 13루블 하고 동전 몇 개가 남았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순례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에핌은 한참 가다가 그늘에서 쉬었는데 잠이 들었습니다. 잠에서 깬 에핌은 엘리사가 자기를 보지 못하고 지나갔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오데사 항구에 도착해서 40루블짜리 왕복표를 끊었습니다. 그때 수도사 차림의 사내가 에핌에게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예루살렘 순례가 두 번째인데 배를 몰래 타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그렇게 하면 공짜로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에핌은 경건한 사람이라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후 그 수도사는 에핌에게 1 루블을 꾸었습니다. 하지만 지갑을 잃어버렸다면서 갚지 않았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핌은 열심히 예루살렘 순례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는 곳마다 가장 좋은 자리에 엘리사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엘리사는 대머리라 빛이 나므로 금방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에핌은 역시 엘리사가 먼저 와 있었군… 했는데 다가가 보면 엘리사의 모습은 사라지곤 했습니다. 동작 한번 빠르군… 하면서 에핌은 엘리사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순례를 마친 에핌은 욥바로 내려와 오데사 행 배를 탔습니다. 그리고 오데사에서 집까지 800킬로미터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엘리사와 헤어진 마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소녀가 나와서 상냥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우리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가세요. 괜찮으시면 하루 주무셔도 돼요.” 에핌이 소녀의 말을 듣고 농가로 들어가자 모든 식구가 그를 반겨 주었습니다. 그들은 엘리사의 도움으로 다시 살게 된 바로 그 농부네 식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에핌에게 엘리사의 도움을 받은 일을 말해 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에핌은 엘리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엘리사… 나의 사랑스런 친구… 자네 몸은 예루살렘에 없었지만, 자네 영혼은 예루살렘에 있었네… 내가 다 봤지.” 이 이야기에서 에핌은 예루살렘에서 본 엘리사의 영혼을 말합니다. 그 빛나는 대머리… 저는 이게 바로 엘리사의 루아흐라고 생각합니다. 엘리사는 고향에 돌아가서도 예루살렘 순례를 하고 있는 에핌을 생각했겠지요. 바로 그 루아흐가 에핌의 눈에 보였던 것 입니다. 엘리사는 술 담배를 끊지 못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루아흐와 아무 관계도 없었습니다. 그의 루아흐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자 발동이 되었습니다. 뭐가 중한디… 결국 엘리사는 스스로 예루살렘 순례를 포기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루아흐가 이것을 결정하게 했다고 봅니다. 물론 에핌은 여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결국 예루살렘에 가서 성지를 둘러보고 감격했습니다. 예수님 무덤 교회, 예수님 부활 교회, 예수님 탄생 교회 등… 볼 가치가 있는 것들이지요. 여기서도 우리는 루아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핌의 루아흐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엘리사의 도움을 받은 농부의 딸이 에핌에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저녁 식사를 하시고 하룻밤 묵어 가세요.” 우리는 이 말에서도 루아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늘 나라가 그들에게 향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합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늘 나라가 저들의 것임이요…가 이루어 졌습니다. 번역에 좀 문제가 있긴 하지만… 팔복 중 두 번째 복에 대해 말씀 드립니다. 한국어 번역은 이렇습니다.“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현대 히브리어 신약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슈레이 하아벨림, 키 헴 여누ㅋ하무.” 애통하는 자가 히브리어로는 ‘하 아벨림’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아벨 동사는 마음 아프게 통곡한다는 뜻인데 아담의 둘째 아들 헤벨을 생각나게 합니다. 우리는 헤벨을 흔히 아벨이라고 하는데, 히브리어 헤벨이 헬라어 성경 즉 셉투아진타로 번역이 되면서 아벨이 된 것 같습니다. 우리 성경 뿐만 아니라 라틴어, 영어 성경 등이 셉투아진타의 아벨을 그대로 채택해 쓰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헤벨을 아벨로 보고 히브리어 아벨을 적용 시켜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아벨이 누구입니까? 들판에서 양을 치던 사람이었지요. 아벨이 명사로는 들판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아무튼 아벨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산 사람이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 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말 입니다. 아마도 루아흐적인 예배였을 것으로 추정해 봅니다. 아벨의 형인 가인도 아담의 아들인지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가인이 드린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화가 난 가인은 동생 아벨을 쳐죽이고 말았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나타나셔서“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벨이 죽으면서 냈던 핏소리… 이것이 바로 애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에게 위로를 주신다고 합니다. 이미 이 땅에서 죽었는데 무슨 위로… 이미 말씀 드렸지만 하 루아흐의 세계는 우리의 생물학적인 삶만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루아흐의 세계는 하늘 나라의 삶과도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벨은 비록 이 땅에서는 생물학적인 목숨이 다했지만, 하늘 나라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톨스토이의 단편 ‘두 노인’에서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이야기를 이용해 다른 이야기를 창작해 볼 수도 있지요. 만약 엘리사가 농부의 가족을 살린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강도를 만나 맞아 죽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엘리사는 죽어가면서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가난한 자들을 도와 주었는데… 이 때문에 돈이 떨어져서 예루살렘 순례도 포기했는데… 왜 나같은 사람에게 강도를 보내 내 생명까지 빼앗게 하시는가… 이때 흘리는 눈물이 바로 애통의 눈물입니다. 가인에게 맞아 죽으면서 아벨이 흘렸던 눈물과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같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서 위로는 히브리어로 ‘나ㅎ캄’ 동사를 씁니다. 하나님께서 슬프게 생각하시고, 하나님께서 편안하게 하신다는 뜻 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애통의 눈물을 흘리면서, 죽고 싶다고 생각할 때, 또는 죽어 갈 때, 그 현장에 나타나셔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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