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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즈 산맥의 최고봉이요 유럽의 최고봉인 쌍둥이 산 옐부르스

 

2014년 2월 17일

자립선교 가능하다 - 러시아 엘호또보 교회의 경우

요즘은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를 카프카즈 산맥으로 본다. 카프카즈 산맥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코카서스 지방을 북서에서 남동으로 나눈다. 참고) 러시아에서는 분리 운동에 대한 염려 때문에 코카서스란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카프카즈 산맥의 북쪽이 러시아고 그 남쪽에 그루지야와 터어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젠, 이란 등이 있다. 참고) 주후 9세기 경에 나타난 유대교 왕국이 이 지역에 있었을 것이다. 카프카즈 산맥의 동쪽에 코카서스 산맥이 있는데 여기에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체첸이 자리한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은 카프카즈 산맥의 최고봉인 해발 5,642m의 옐브루스다. 옐브루스는 봉우리가 두 개인데 동쪽에 있는 것이 최고봉이다. 우리가 흔히 유럽 최고봉으로 알고 있는 알프스 산맥의 몽블랑은 해발 4,810m이다. 2014년 2월에 있었던 동계올림픽이 열린 소치 시는 카프카즈 산맥 서쪽, 그루지아 북서쪽에 위치한 흑해변의 휴양도시로 러시아 최남단 도시다. 소치 올림픽 때 러시아의 방송매체들은 카프카즈 산맥과 옐부르스 쌍동이 봉우리를 자주 소개했는데 유럽 최고봉의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노력이 아닌가 한다. 아직 잘 알려 지지 않은 옐부르산은 올림픽 이후 러시아의 중요한 관광 자원이 될 것이다. 16-18세기 유럽에서는 쿠마마니치 저지대를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로 생각했다. 쿠마마니치 저지대는 쿠마 강과 마니치 강이 있는데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 쿠마마니치 운하가 부설되어 흑해와 카스피해가 연결 되었다. 쿠마마니치 저지대는 카프카즈 산맥 북쪽에 위치하므로 쿠마마니치 저지대를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선으로 보면 유럽의 최고봉은 몽블랑이 되는 셈이다.

소치에서 거의 같은 위도로 카프카즈 산맥을 넘으면 동쪽에 '날칙'이란 도시가 있다. 코카서스 지방의 관문으로 공항이 있으며 러시아의 남쪽 안보를 위해 매우 중요한 거점 도시다. 소치에도 공항이 있는데 아마 카프카즈 산맥 때문에 가까운 위치에 두 개 공항이 있을 것이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국내선 여객기를 타면 날칙에는 2시간 만에 소치에는 2시간 반만에 도착한다고 한다. 모스크바에서 기차를 타면 둘 다 30시간 이상 걸린다. 코카서스 지방은 지도에서 보다시피 여러 민족들이 어울려 사는 곳이다. 그러므로 고래로 일상의 갈등이 전쟁과 같은 폭동으로 변하곤 했다. 요즘은 체첸공화국이 러시아 연방에 대해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 정부는 무력으로 이들을 진압하고 있는데 체천은 게릴라 전을 벌이며 테러로 대응하고 있다. 그래서 이 지역은 위험 지구로 선포되었고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는 반역의 도시로 선전이 되고 있으며, 외국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다.

카프카즈 산맥에서 내려 오는 눈 녹은 물은 산맥의 동서 양쪽의 땅을 항상 기름지게 적신다. 스탈린 시절에 공산주의자들은 시베리아 동부에 살고 있던 한민족을 없애서 인종 갈등을 해결하려 한 적이 있다. 이때 스탈린의 한 참모가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다 죽이겠느냐 차라리 코카서스 빈 들에 내다 버리면 우리가 책임을 면할 수 있지 않느냐 해서 그 사람들을 기차로 실어다 이 곳 벌판에 버렸다고 한다. 이게 바로 코카서스 카레스키야의 기원이다. 이들은 코카서스 평원이 기름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며 결국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으로 난민들이 쏟아져 들어오자 이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봉사하여 러시아 사람들의 인심을 샀다고 한다. 이 카레스키야 가운데 일부가 훗날 본 교단 영등포노회의 동서선교회와 만나게 되고 그 중 엘호또보(Elchotovo)에 살던 사람들이 동서선교회의 멤버였던 구로제일교회의 이성로 목사와 함께 자립하는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이성로 목사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선교학 박사 논문을 썼고, 이 논문을 '자립선교 가능하다'란 제목으로 출판을 했다.

 

이성로 목사는 구로제일교회에 부임한 후 교회를 화합시킨 뒤 '천원선교헌금' 운동을 시작했고 주 러시아 이소영 선교사와 동서선교회장 이상운 목사를 통해 술 공장이 있는 엘호또보 지역을 소개 받았고, 2000년 11월부터 엘호또보 개척 선교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교회개척과 신학생 교육과 농사공동체 조성에 열심을 냈는데, 2009년 6월 선교지의 최 모 전도사가 "더 이상 돈 보내지 마세요. 이제 우리도 살 수 있수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자립하는 선교가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이것으로 자립 선교의 가능성을 본 이성로 목사는 미국 그레이스 신학교에서 선교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자립 선교에 대한 이론적 체계를 세웠고 지도 교수가 감동한 훌륭한 학위 논문을 쓸 수 있었다.

2014년 2월 17일 월요일 정오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이성로 목사는 구로제일교회 예배실에서 출판기념회를 열고 자신의 책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선교사파송연구회동문들은 선파동문회 부회장인 이성로 목사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여 출판을 축하했다. 장영일 회장(전 장신대총장)이 경건회 인도를 했고, 최진호 서기(선교사)가 강연회를 사회했고, 최경순 회계(서울장신대교수)가 논찬을 했다. 이 자리에는 주 파키스탄 선교사인 이준재 목사, 주 이디오피아 선교사인 이규현 목사 등도 참석했다.

강연 내용...

"나무를 옮겨 심는 선교가 아니라 씨 뿌리는 선교를 해야 한다. 그리고 씨는 싹이 나 다섯 개의 잎이 생길 때까지가 중요하다. 이것을 싹아지라 하는데, 싹아지가 옹골차면 이건 어디에 옮겨 심어도 성공을 보장할 수 있다. 오늘 한국 선교는 나무를 옮겨 심는 선교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선교비가 끊어 지면 선교사는 귀국을 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도 씨 뿌리는 선교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씨 뿌리는 선교를 생각하다 보니 결국 농사를 짓는 선교를 하게 되었다. 엘호또보 교회가 자립이 되자 현지 사람들이 이런 방식의 교회 개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희망자들을 데려다 영등포 노회 부설 성서신학원에서 신학을 공부시켜 전도사로 만들고 이들을 고향으로 돌려 보내 교회를 개척하게 하고 사역을 감당하게 했다. 이들도 농사를 통해 자립하는 교회를 이루게 되었다. 땅은 중요하다. 우리가 땅을 활용할 줄만 알면 세계 어디서나 자립 선교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농사를 지어서는 자립 선교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은 일년에 한번만 수확을 했던 우리의 과거 경험 때문이다. 그러나 선진 농업 기술을 이용하면 매일 수확하여 매일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엘호또보 교회의 자립 성공은 한국의 선진 농업 기술과 훌륭한 종자와 현지인들의 부지런한 노동이 어울려 이루어 낸 결과다. 엘호또보 교회의 비닐 하우스 농장에서 자라는 고추나 파프리카나 오이 배추 무우 등은 최상의 품질을 자랑한다. 한국 선교사들은 스스로 모금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은 선교사와 후원 교회에 모두 부담이 된다. 선교사의 사역도 그렇지만 선교사의 은퇴 후 삶에 대해 교단적으로 아무 대책이 없는 게 사실이 아닌가? 사역을 그만 둔 선교사에게 어떤 교회가 후원을 해 줄 것인가? 선교사의 노후를 생각해도 자립 선교는 필수적이다."

의문점..

자립 방법으로 제시한 농업공동체는 코카서스 평원처럼 땅이 기름지고 물이 많은 곳에서 효과적으로 보인다. 비닐하우스를 설치하기 어려운 열대지방이나 한대지방에서 농업으로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이런 지역은 어떤 자립 전략을 세워야 하는가? 헌금으로 지원한 선교비가 개인 재산으로 바뀔 가능성에 대한 연구와 이에 대한 방지책이 마련이 되어 있는가? 정치적 인종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지역에서 항구적으로 교회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2월 17일 구로제일교회서 선파동문회 부회장 이성로 목사의 '자립선교가능하다' 출판기념회가 있렀습니다. 아래 사진은 축하 케잌 커팅. 왼쪽부터 이상운 목사(영등포노회 동서선교회 회장, 당일교회 원로목사), 장영일 목사(선파동문회 회장, 전 장신대 총장), 이성로 목사, 김석은 목사.


2005년 3월 10일 저녁 8시

베트남 김덕규 선교사

참으로 오랜 만에 그를 만났다. 장신대 선교사파송연구회 개강 예배 강사로 불려 갔다가 특강을 해 주러 온 김덕규 선교사를 만난 것이다. 업무 때문에 잠깐 귀국했다고 말했다. 부인은 선파 후배들을 위해서 귤을 한 상자 사왔다. 그의 특강을 귀 기울여 들었다. 다음은 요약이다. "신학교 졸업한 후에 선교사의 꿈을 접고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다 서정운 교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베트남으로 가라고 하셨지요. 내가 정말 선교사의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후에 선교사의 일은 내가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감당케 하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선교사 훈련을 받은 후에 베트남 호치민 시로 갔습니다. 당장 언어가 문제더라구요. 베트남 말이 워낙 어려워야지요. 그리고 현지 정착하는 데에 비용도 많이 들었습니다. 내 동생이 생활비를 거의 다 대주었지요. 아이들 교육 문제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베트남 현지 학교에 보냈습니다. 이 아이들이 지금은 잘 자라서 하나는 한동대학교에, 하나는 카이스트에 다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요. 한 5년 동안은 베트남에 혼자 있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 마음을 털어 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호치민에 선교단체들과 선교사들이 들어 오면서 외로운 문제는 다소 해결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선교사들과 협력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성품이 변할까요? 나는 변한다고 믿습니다. 선교사들과의 관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성품입니다. 경험없는 선교단체들이 돈을 낭비하는 모습을 보고 협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같으면 1,500-2,000만원이면 할 수 있는 일을 3,000만원이나 들여서 하더라고요. 지금은 한아봉사회(서울 종로구 연지동 136-46 전화 764-2068)와 협력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기독교와의 해우가 참으로 비극적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국주의를 통해서 기독교를 만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만약 가능하다면 기독교란 말을 쓰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기독교란 말이 베트남 사람에게는 너무 가슴 아픈 의미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기독교란 종교로 대변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결국 베트남 사람들 가운데 우리 부부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말이지요. 사람들이 교회에 데리고 나가달라고 합니다. 베트남에는 교회가 별로 없어요. 한번 멀리 있는 교회에 데리고 갔는데 그건 할 짓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혼자 믿어라고 했습니다. 혼자 성경 읽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그러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이게 베트남의 현실입니다. 지난 1월 10일에 베트남 정부가 나를 하노이로 오라고 하더군요. 웬일인가 했더니 포상을 한 대요. 호치민에서 하노이까지 직선거리 1,700킬로인데... 그 길을 갔지요. 정부 고관들이 모인 곳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베트남 정부에서 주는 상들 가운데서 두 번째 큰 상이라 합니다. 상의 이유는 '당신이 베트남을 위해서 한 일은 그 돈의 액수가 미국인이나 프랑스인의 그것에 비하면 아주 작지만 베트남 사람을 인정해 주고 베트남 사람과 함께 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베트남 선교사로서 보람을 느끼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내게 강연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기에 베트남어로 강연을 했습니다. 사실 속으로는 복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좀 참았습니다. 그 대신 한국교회에 감사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들이 좀 놀란 표정을 짓더군요." 김덕규 목사는 선파 후배들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었던 베트남 선교 현장에서 겪은 여러 가지 일들을 필자에게 말해 주었다. 그런 어려운 일들이 다시 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임무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성계)


리비아 사막의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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