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46

Dt.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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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 Listening

 

2022년 6월 12일

 

신명기 9장 11-21:

[11] 사십 주 사십 야를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돌판 곧 언약의 두 돌판을 주시고 [12]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여기서 속히 내려가라 네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도를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었느니라 [13] 여호와께서 또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았노라 보라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14] 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애고 너를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시기로 [15]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산에는 불이 붙었고 언약의 두 돌판은 내 두 손에 있었느니라 [16] 내가 본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도를 빨리 떠났기로 [17] 내가 그 두 돌판을 내 두 손으로 들어 던져 너희의 목전에서 깨뜨렸노라 [18] 그리고 내가 전과 같이 사십 주 사십 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서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여 크게 죄를 지었음이라 [19]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하였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20]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 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 [21] 너희의 죄 곧 너희가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찧고 티끌 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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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송아지 우상숭배    

     

신 34.5에 따르면 모세는 모압 땅에서 죽었습니다. 모압 땅은 넓은 지역을 일컫기 때문에 모세가 느보 산의 비스가(꼭대기)에서 죽었다고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다음 절에 따르면 벳브올 맞은 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다고 합니다. 벳브올은 서쪽으로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여리고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요단강으로 흘러드는 어떤 와디를 사이에 두고 익명의 골짜기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무덤은 당연히 여리고가 아니라 북쪽에 있는 익명의 골짜기에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여리고에 갈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가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로 부터 천 년 하고도 몇 백 년이 지난 후, 유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그 소리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사 40.3에 이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예언을 한 이사야 선지자는 모세와 요한 사이에 위치하는 사람입니다. 모세에서 이사야까지의 시간과 이사야에서 요한까지의 시간이 거의 같습니다. 그런데 유대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던 요한이 세례를 베풀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례를 베풀려면 물이 있어야 하지요.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단강도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다고 하면 이것은 모세의 무덤이 모압 땅에 있다는 것과 비슷한 표현입니다. 필자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요. 일산도 대한민국에 속하니까… 그런데 요한의 제자였던 또 다른 요한, 즉 요한복음의 저자로 추정되는 요한은 요 1.28에서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곳이 요단 강 건너 편 ‘베다니’라고 말합니다.

요단강 서쪽에서 나고 자란 요한의 입장에서 요단강 건너 편이라 하면 당연히 요단강 동쪽이 됩니다. 그리고 베다니라고 하면 베이트 아니, 즉 가난한 자들의 동네, 달리 말하면, 달동네란 뜻이 됩니다.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장소는 요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벳브올의 북쪽 맞은 편이 됩니다. 거기에 요단강 지류에 속하는 와디가 몇 개 있고 이것들을 중심으로 해서 가난한 자들이 모여서 살았다는 겁니다. 당시에는 그래도 이 와디들을 통해 물이 많이 흘렀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요르단 정부가 도처에 댐을 만들어서 여기가 사막화 되었다고 하지요. 필자의 입장에서는 댐이나 사막화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모세의 무덤이 있는 벳브올 맞은 편 골짜기라는 곳과 요한의 세례지인 요단강 건너 편 베다니라는 곳이 결국 같은 곳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지요.

사실 성지라 하는 이스라엘에 가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면 의미가 중첩된 곳들이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대개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지요. 가령 예루살렘의 시온 문 근처에 있는 소위 마가의 다락방이 그렇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은 그 크기로 보아 결코 다락방이 아니지요. 차라리 마가의 저택이라 해야 어울립니다. 그런데 그 저택의 1층은 다윗의 유적지입니다. 그리고 2층은 성령강림의 유적지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결코 1층에 가지 않고 유대인들도 2층에 결코 가지 않습니다. 다윗의 역사나 성령강림의 역사나 모두 하나님의 역사인데 우리는 종교에 따라 나누고 있지요.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을 이단자들이라 하고 기독교인들은 타낙을 구약성경이라 하면서도 신약적 해석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구약성경의 진수들을 모두 무시하면서 유대인들을 비웃고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 봐도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서로를 대하는 면이 너무 어리석습니다. 서로 나누면 엄청난 유익을 얻을 뿐만 아니라 시너지 효과를 보아 신약학을 포함한 성서학을 더욱 더 발전시킬 수 있을텐데… 어리석은 반목질시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이 좋은 것들을 모두 놓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 필자는 나 자신만이라도 그 엄청난 유익을 누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모세의 무덤과 요한의 세례터가 일치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중첩된 사실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거든요. 아니, 많거든요. 모세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 지금도 알 수 없지요. 하지만 벳브올 맞은 편 골짜기와 요단강 건너 베다니는 거의 같은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은 모세의 무덤 근처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던 것이고, 예수님은 그 곳에 오셔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 이것을 가리켜 많은 사람들이 메시야 취임 예식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모세의 무덤 가까이서 메시야 취임 예식을 거행하셨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모세의 토라와 예수님의 복음이 연결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무덤에서 거행된 메시야 취임 예식!

그래서 필자는 벳브올 맞은 편 골짜기와 요단강 건너 베다니는 토라와 복음이 연결되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고학적인 발굴을 해봐야 알겠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자주 중첩된 의미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 둘은 같은 지점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모세와 예수님 사이에 1,40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지만 700년쯤 되는 시기에 이사야가 나와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에 대한 예언을 한 것이 우연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사야는 토라와 복음을 연결시키는 작업을 한 것이지요.

참고로, 웃시야 왕의 서기관이었던 이사야는 유다 지파 사람이었고, 웃시야 왕이 죽는 해에 그는 하나님으로 부터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전 745년 부터 695년 까지 50년 동안 선지자로 살았습니다. 그의 이름 이사야는 우리 말로 ‘여호와는 구원’이란 의미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로 구원을 예슈아, 즉 ‘예수’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사야의 책에서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토라와 복음의 관련성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으로 인해 토라의 효력이 정지 되었는지, 정지 되었다면 100% 정지 되었는지 아니면 어지간히 정지 되었는지 전혀 정지 되지 않았는지, 이것을 규명해야 합니다. 이것을 규명하지 않으면 우리는 구약성경을 대할 때 주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구약을 신약에 붙여서 성경전서라고 부르며 들고 다닐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겠지요.

 

모세의 토라

우리 말 성경에서 토라는 ‘율법’이라 번역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규례, 하나님의 율례 등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토라 이외의 다른 단어들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이 표현에 대해서는 우리가 시편 119편을 히브리어로 읽으면서 공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과 약속과 율법과 규례와 율례 등은 어떤 미세한 차이가 있는지… 아무튼 율법으로 표현되는 토라는 모세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출애굽 원년 오순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날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직접 주셨습니다.  

모세는 신명기 9장 9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여기서 그 때에…는 히브리어 ‘빠알로티’에서 빠-만 번역한 것이고 알로티는 “내가 올라가서…”를 번역한 것입니다. 여기서 모세는 출애굽기 20장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지 50일이 되던 날 호렙산 기슭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참고로, 신명기는 호렙산을 시내산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아무튼 당신의 목소리로 직접 십계명을 반포하셨습니다. 이것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한 자유인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신부가 되었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십계명은 혼인 서약서, 즉 ‘케투바’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십계명을 반포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출  20.19)”. 이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호랍산 꼭대기로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아래로 내려오지 않으셨지요. 모세는 호렙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40주 40야를 머물며 떡도 마시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미 반포하신 바 있는 십계명을 40일 만에 싸파이어 판 둘에다 기록하시고 그것을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이 십계명을 우리는 토라나 미쉬파팀이나 미쯔보트라고 하지 않습니다. 드바림이라고 하지요. 십계명을 신명기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십계명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 중 핵심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계명을 바탕으로 산상수훈을 반포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계명을 바탕으로 하여 산상수훈을 반포하신 것은 이례적인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이 랍비가 되면 십계명을 해석해서 자기 말로 표현하고 선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직무가 됩니다. 그래서 토라학교를 나와 랍비가 되신 예수님도 그렇게 하신 것이지요.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이 십계명을 하나님의 목소리로 직접 들은 날이 첫 번째 오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그의 제자들과 무리들이 들은 날은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된 해의 오순절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을 하신 해의 오순절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보혜사 성령이 강림하시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모두 오순절에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모세는 신명기 9장 11절에서 그가 호렙산 꼭대기에 머문 지 40일 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십계명 판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는 이것을 ‘언약의 두 돌 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급하게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도를 떠나 우상을 부어 만들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목이 곧은 자들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멸하고 그들의 이름을 지우고 모세를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를 아브라함이나 야곱의 반열에 세우겠다고 하신 겁니다.

이 말씀을 듣고 모세는 양 손에 돌 판 하나씩 들고 산을 내려왔는데 과연 이스라엘 백성은 금으로 송아지 우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 미쳐 날뛰고 있었습니다.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모세는 두 손에 들고 있던 십계명 돌 판 두 개를 아마도 그들을 향해 던져서 깨뜨려 버렸습니다. 돼지 발에 진주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돌 판을 던져 깨뜨리라고 하신 적은 없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무슨 이유로 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나 하는 점이 중요해 집니다. 그들은 본래 이집트의 고센 땅에서 살았습니다. 고센 땅은 나일강 하류의 삼각주 지대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센 땅에 산 이유는 가나안 땅으로 가기 쉬웠고 아울러 가축을 기르기에 좋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늪이 많아서 물소를 비롯한 많은 야생 짐승들이 삽니다. 물소들 가운데는 특별한 모습의 괴물같은 것들도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수 많은 신들 가운데 ‘아피스’라는 신이 괴물같은 물소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신은 소위 창조의 신인 프타의 현신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훗날 아피스는 멤피스의 수호신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 송아지 우상을 만든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50일 만에 하나님께로 부터 직접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이게 오순절 사건이지요. 따라서 그들은 우상숭배가 얼마나 큰 죄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오순절 후 40일 동안 호렙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자 일부이긴 해도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이 금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거기다 숭배 예식을 치루었습니다. 이에 대해 요즘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분노하신 것은 우상숭배 때문이 아니라 금 송아지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기야 이집트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은 아피스 신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아피스 신은 머리에 삼각형이 그려진 검은 물소 형상을 가졌는데 이집트인들은 이게 창조의 신인 프타의 현신이라고 주장 했습니다. 이 신은 주전 2,700년 경에 이미 있었다고 하니 아브라함이나 야곱이나 모세도 아피스 신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겁니다. 나일강 삼각주인 고센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검은 물소의 신인 아피스를 몰랐을 리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를 한다고 알려 주셨고 모세는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새겨주신 사파이어 판 두 개를 들고 호렙산을 내려왔습니다. 모세가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의 금 송아지 우상숭배는 참 열렬했습니다. 이에 화가난 모세는 십계명이 새겨진 판 두 개를 그들을 향해 던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십계명은 돼지 발에 진주란 생각이 들었던 걸까요? 이후 엄청난 역풍이 불었습니다. 모세는 레위인들을 시켜서 우상숭배자 3천 명을 칼로 죽였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우상을 만들어 준 아론을 죽이고 모세를 통해 새로운 나라를 만들 생각까지 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무한한 자비로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셨지만 이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출애굽 90일 만에 있었던 금송아지 우상숭배는 그들에게 영원한 수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금으로 황소(빠카르) 대신 송아지(에겔)를 만들었습니다. 파라오에게 돌아갈 생각을 했던 그들은 감히 아피스 신상을 만들지 못하고 그의 새끼 신상을 만든 것이지요. 오늘날에도 세계 여러나라 증권거래소 앞에는 황소의 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는 황소의 상 앞에 곰의 상이 세워져 있지요. 황소는 상향장을 상징하고 곰은 하향장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아무튼 황소는 우상이 될 만큼 힘을 가졌습니다.         

                            

 

 

 

2022년 6월 5일

 

신명기 9장 9-21: [09]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두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 [10] 여호와께서 두 돌판을 내게 주셨나니 그 돌판의 글은 하나님이 손으로 기록하신 것이요 너희의 총회 날에 여호와께서 산상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라 [11] 사십 주 사십 야를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돌판 곧 언약의 두 돌판을 주시고 [12]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여기서 속히 내려가라 네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도를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었느니라 [13] 여호와께서 또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았노라 보라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14] 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애고 너를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시기로 [15]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산에는 불이 붙었고 언약의 두 돌판은 내 두 손에 있었느니라 [16] 내가 본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도를 빨리 떠났기로 [17] 내가 그 두 돌판을 내 두 손으로 들어 던져 너희의 목전에서 깨뜨렸노라 [18] 그리고 내가 전과 같이 사십 주 사십 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서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여 크게 죄를 지었음이라 [19]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하였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20]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 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 [21] 너희의 죄 곧 너희가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찧고 티끌 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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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은 호렙산 기슭에 도착했습니다. 신명기는 호렙산을 단 한 번도 시내산으로 부른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50일 째가 되는 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호렙산 기슭에 모우시고 친히 말씀으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십계명을 가리켜 드바림이라고 합니다. 말씀이란 뜻이지요. 대개 율법의 조항을 가리켜 미쉬파팀 또는 미쯔보트라 하는데 십계명에 대해서는 결코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드바림은 미쉬파팀이나 미쯔보트 보다 훨씬 더 격이 높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은 결국 율법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란 의미가 됩니다.

신명기 9장 9절은 ‘빠 알로티’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내가 올라간 때…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주시는 십계명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저들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모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달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출 20.21에 따르면 백성은 멀리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흑암으로 가까이 갔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파이어 판 둘에다 십계명을 직접 새겨주셨다고 합니다. 이를 받기 위해 모세는 40일 동안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를 했다고 하지요.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호렙산 기슭에서 맞은 첫번째 오순절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십계명을 주신 날이고, 아울러 모세가 그들을 대신하여 십계명을 새긴 돌 판을 받기 위해 호렙산으로 올라간 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날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으로 십계명을 반포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십계명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두 돌 판에 새기시고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기 위해 모세를 호렙산 위로 올라오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결국 오순절의 의미가 되는데 이 의미를 우리는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로 부터 처음으로 받은 십계명 돌 판은, 즉 사파이어 판 본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40일 동안 산을 내려오지 않은 모세가 산 위에서 죽었다고 단정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우상숭배를 감행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유감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애굽 후 50일 째에 있었던 하나님의 직접적인 십계명 수여 사건, 즉 나탄 토라 사건은 우리에게 영원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이 결국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 때의 산상수훈 반포로 나타났고, 또한 예수님의 부활 승천 직후 보혜사 성령의 강림으로 나타났습니다. 모두 오순절에 있었던 일들이지요. 따라서 금송아지 우상숭배 사건은 우리로서는 별건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신명기 9장의 십계명과 관련한 우상숭배 사건은 우리의 영원한 아픈 추억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짐하지요. 목이 곧은 백성이 되지 않으련다… 주님, 우리에게 은총을 내려 주십시오. 우리 목에서 기부스를 떼어내 주십시오.  

 

정리

진 나라 시황인들 그 왕관을 쓰고 홀로 100리 밖으로 나갈 수 있었을까… 10리도 못가서 자객에게 쓰러지지 않았을까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찌감치 죽어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은혜고 모든 것이 감사제목입니다. 모세는 120년 동안 이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감사는 하나님께로 수렴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바알브올 강변에 앉아 가나안을 바라보면서 이 감사를 정리했습니다.

모세가 강변에 앉아 하나님께 드렸던 감사는 출애굽 원년 오순절 사건에서 시작합니다. 신 9.9에다 모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여기서 그 때에…는 히브리어 ‘빠알로티’에서 빠-만 번역한 것이고 알로티는 “내가 올라가서…”로 번역합니다. 모세는 출애굽기 20장의 장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지 50일이 되던 날 호렙산 기슭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나셔서 당신의 목소리로 직접 십계명을 반포하셨습니다. 이것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한 자유인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신부가 되었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십계명은 혼인서약서, 즉 케투바란 말이지요.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십계명을 반포하는 하나님의 목소리 조차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출  20.19)”라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호랍산 꼭대기로 올라오라고 하셨고 모세는 호렙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40주 40야를 머물며 떡도 마시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40일 만에 이미 반포하신 바 있는 십계명을 싸파이어 판 둘에다 기록하시고 그것을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이 십계명을 우리는 토라나 미쉬파팀이나 미쯔보트라고 하지 않습니다. 드바림이라고 하지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 중 핵심이 되는 말씀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계명을 바탕으로 산상수훈을 반포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 랍비들의 직무이기도 합니다. 이 십계명을 하나님의 목소리로 직접 들은 날이 첫 번째 오순절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산상수훈과 연결되고 성령강림사건과 연결됩니다. 모두 오순절에 일어난 일들이지요.   

 

 

 

 

2022년 5월 29일

 

신명기 9장 1-10절: [01] 이스라엘아 들으라 네가 오늘 요단을 건너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니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았으며 [02] 크고 많은 백성은 네가 아는 아낙 자손이라 그에 대한 말을 네가 들었나니 이르기를 누가 아낙 자손을 당하리요 하거니와 [03] 오늘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 [0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너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05]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06]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07]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 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 [08] 호렙 산에서 너희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느니라 [09]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 [10] 여호와께서 두 돌판을 내게 주셨나니 그 돌판의 글은 하나님이 손으로 기록하신 것이요 너희의 총회 날에 여호와께서 신상 불 가운데서서 너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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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공의가 아니라 그들의 악함 때문에    

     

히브리어로 ‘아나킴’이라 하고 우리 말로 ‘아낙 자손’이라 하는 사람들… 민수기 13장 22절에 처음 나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출발한 열 두 명의 정탐꾼들이 네게브를 거쳐 헤브론으로 갔을 때 그 곳에서 아낙 자손인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다고 합니다. 같은 장 33절에 따르면 이들은 네피림(네필림)의 후손이었고 거인들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 4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홍수를 통해 사람들을 멸절시키려 하셨을 때 거기에 네피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용사(끼뽀림: 챔피온)로서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메올람 아네쉐이 하쉠)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홍수 후에도 존재했고, 또한 이들은 가데스 바네아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입성을 포기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 사람들이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에 숨은 것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아낙 자손과 비교하면서 “우리는 메뚜기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복에도 우리는 메뚜기 같았을 거라고 했습니다. 민 13.33. 이제 우리는 다 죽었다… 이거지요.

물론 네피림의 후손인 아낙 자손들은 모세 당시에도 전설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거하는 크고 많은 백성을 가리켜 몽땅 아낙 자손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우리가 훑어봤듯이 신명기 7장 1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상대할 가나안 7족의 이름들이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이들 모두 아낙 자손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가나안 7족이 공히 아낙 자손의 생물학적 유전자를 이어 받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들도 아낙 자손의 정신과 가치와 행동을 본받아 매우 폭력적이고 욕정적으로 살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일까요? 헤브론에 있던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아낙 자손을 위로는 네피림과 연결시키고 또한 아래로는 다윗 시대의 골리앗과 연결시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일단 이들은 거인이므로 키가 3미터 이상일 겁니다. 7미터가 되는 자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스라엘 백성이 물리친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도 거인이라 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네피림을 타락한 천사의 후손들이요 또한 우주에서 온 생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6.4은 네피림을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고 이들이 고대의 명성있는 용사가 되었다고 하니 이들과 네피림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민 13.33이 아낙 자손을 네피림의 후손으로 말하고 있으므로 결국 이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가치관 조차 혼돈 시키는 존재들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인 신 9.2에 따르면 가나안 백성을 아낙 자손으로 규정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아낙 자손에게 이미 패배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기를 가나안 땅의 아낙 자손을 속히 파멸시키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파멸시키란 동사는 ‘아바드’ 동사를 씁니다. 헤렘을 나타내는 ‘하람’ 동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의 아낙 자손을 파멸시키고 스스로 젠체 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하면 그게 이스라엘이 공의로워서(브-찌드카-티)가 아니라 가나안 땅의 아낙 자손이 악하기(리쉬아) 때문에 하나님께서 쫓아내신 것을 알라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어 ‘리쉬아’는 특히 인간 관계 속에서 윤리적으로 또한 종교적으로 사악함을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공의롭지도 않고 정직(요쉐르; 올곧음)하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가나안 땅의 아낙 자손을 파멸시키라 하셨으니 이것은 아낙 자손이 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가나안 땅에서 쫓아내기로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바를 이루기 위하심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얻은 것은 이스라엘의 공의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본디 목이 곧은 백성(암-크쉐-오레프)이기 때문이지요. 암-크쉐-오레프는 이후 이스라엘 백성의 별명이 되었습니다.

 

정리

신 9.2에서 모세는 가나안 사람들을 가리켜 ‘아낙 자손’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신 7.1에서 밝힌 가나안 7족속과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아낙 자손이란 말은 민 13.22에 처음 나오는데 여기서는 아히만, 세새, 달매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이 자연인을 말하는 건지 어떤 부족이나 세력을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민 13.33는 이들을 가리켜 네피림의 후손이요 거인들이라고 합니다. 가나안 정탐꾼들 가운데는 이들에 비해 이스라엘 백성은 메뚜기같다고 자조하는 말을 한 자(들)도 있었지요. 그러고 보니 네피림의 후손과 아낙 자손과 당시 거인들은 같은 의미로 쓰였네요.

창 6.4는 노아 당시에 네피림이 있었고 이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아낙 자손을 네피림의 후손이라 했고 또한 거인들이라 했으며, 신명기 앞 부분에서 이스라엘이 사로잡은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아모리 인이요 거인이라 했으며, 신명기 9장에서는 가나안 사람들을 모두 가리켜 아낙 자손이라 한 것은, 어떤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가나안 땅에 있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의 성격을 말하려는 것이었지요. 그 세력은 전통 있어 인간의 열등감을 사로잡는 것이고 (이스라엘이 보기에) 거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아낙 자손을 속히 멸하라 하셨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낙 자손이 악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멸하라는 동사는 신 7장에 나오는 헤렘과 상관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메뚜기 같다는 생각을 버리고 용감하게 나아가 아낙 자손을 멸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반드시 이길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 일을 맡기신 것은 이스라엘이 공의롭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목이 곧은 백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구태여 이스라엘을 통해서 아낙 자손을 멸하시려 하신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 때문이었습니다. 그 맹세는 그들의 후손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게 하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부터 일방적인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출애굽 여정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배역의 역사였습니다.    

 

 

 

 

2022년 5월 22일

 

신명기 8장 11-20절: [11]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17]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라 [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20]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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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네게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라    

 

기독일보 인터넷판 2022년 5월 19일 자 기사입니다. “김삼환 목사(명성교회 원로), 권태진 목사(군포제일교회),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등이 19일 ‘갈릴리 형제회’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가졌다. 소 목사는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이 같은 소식을 전했다. 소 목사는 “갈릴리 형제회는 서울이 고향이 아닌, 예수님 당시 갈릴리와 같은 시골 출신의 대형교회 목회자 모임”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이 모임의 장(長)형님은 김삼환 목사님”이라며 “그리고 까마득한 선배 형님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 그래서 갈릴리 형제회의 막내가 바로 저다. 막내이지만 명성교회 다음으로 교회도 가장 크고, 또 총회장도 가장 일찍 지낸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소 목사는 “그간 코로나 때문에 전혀 모임을 가질 수 없었지만 오랜만에 모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오늘 김삼환 목사님께서 한국교회가 정적 문화보다는 동적 문화를 일으켜야 한다는 좋은 말씀을 하셨고, 저 역시 인사 말씀을 드리는 시간이 있었다”고 했다. 그 내용의 골자는 “한국교회는 지도자가 부족하고 어른이 없다. 그래서 코로나 상황 속에서 우린 너무나 많은 분파로 찢어졌고, 서로가 서로를 공격했다. 이제 김삼환 장형 목사님이 어른이 되셔서 균형추를 잘 잡아주시고, 한국교회를 하나로 만드는데 앞서 주셨으면 고맙겠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저는 (예장 합동) 총회장과 한교총 연합 기관장을 마쳤지만, 앞으로도 한국교회를 계속해서 섬겨야 할 입장이기에 여러분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많이 도와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저는 자기가 유지하고 있는 교세와 비슷한 교회들의 담임목사들을 모아 어떤 모임을 갖는 목사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골 출신으로 서울에서 소위 성공한 목회자들의 모임이라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더구나 그런 성공에 대해 아무런 감사없이 앞으로 더 성공하겠다는 다짐은 대기업 회장들처럼 보일 뿐입니다.  저로서는 이 기사에 대해 보탤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습니다. 다만 신명기 8장 11-20절을 대비시켜볼 필요를 느낄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노예였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파라오를 위해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쉬는 날 없이 파라오를 위해서 일했지만 그들이 파라오에게서 받았던 것은 고작 하루하루 먹고 살 수 있는 양식 뿐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시키시고 40년 동안 광야에 살게 하시면서 공짜로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주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처럼 부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일주일에 하루를 안식일로 정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육체와 함께 영까지 쉬게 하셨습니다.

물론 그들이 먹었던 만나는 그의 조상들은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집트에서 먹던 음식과 비교하면 참으로 허접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만나 때문에 광야에서 생존할 수 있었고 세대교체까지 이룰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기를 만나를 먹이신 것은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다.”고 말합니다.

만나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무엇도 먹을 수 있습니다. 만나를 먹으며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에서 살던 사람들이 모든 게 갖추어진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면 그들은 잘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곧 배부르게 살면서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기 거주하게 되겠지요. 그들의 소와 양은 번성하고 은금은 증식하여 소유가 풍부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잘 살게 되면 교만해 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모세는 그때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으니 이렇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게 하나님께서 네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 때문이지 네가 잘나서가 결코 아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잘난 척을 하면서 우상숭배를 할까봐 걱정이 태산같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붙였습니다. “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면 너희가 반드시 멸망하리라!”   

 

 

 

 

 

2022년 5월 15일

신명기 8장 1-10절: [0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0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0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0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0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0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0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0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09]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10]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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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낮추시며…    

     

출애굽부터 가나안 입성까지의 장정은 본래 1년 6개월짜리 프로젝트였습니다. 출애굽 원년 유월절부터 출애굽 제 2년 초막절까지 18개월 동안 진행이 되는 것이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가데스바네아의 반역사건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40년으로 늘어나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해 모세는 오늘 본문에서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라는 주석을 붙였습니다.

낮추시다… ‘아나ㅎ’ 동사를 씁니다. 겸손해 지도록 강제하는… 대략 이런 뜻이지요. 왜냐하면 아나ㅎ 하지 않으면 지가 잘난 줄 알고 지 마음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우습게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겸손해 지도록 강제하시고 낮추셨다는 말입니다.

사실 출애굽 1세대는 당시 최고의 문명국가였던 이집트에서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처지가 노예였다 해도 그들의 생활은 별로 어렵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인간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파라오가 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파라오를 둘러싼 이집트 본토인들은 인간으로 살았을 것이고 나머지는 그들의 수족으로 살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은 의식주 문제에 큰 고통을 받지 않은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런데 가데스바네아의 반역사건 이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낮추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얼마나 낮추셨는가… 그들로 하여금 주리게 하셨다고 합니다. 하기야 광야에서 이집트의 식생활을 어찌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라는 것을 먹이셨다고 합니다. 만나는 이스라엘의 조상도 몰랐고 당시 이스라엘도 몰랐던 먹거리였습니다. 오죽하면 이름이 만나겠습니까? 만나는 “이게 뭐지?”라는 뜻입니다. 추정컨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른 먹거리가 있었다면 그들은 만나를 먹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만나 밖에 없다면 만나를 먹을 수 밖에 없지요. 이것을 우리는 모세의 말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이것은 예수님께서 40일 금식 후 주리셨을 때 돌로 떡을 만들라 했던 유혹자에게 하셨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본디 모세의 말이었지요.  

이후 모세는 이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입고 있던 의복이 해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발도 부르트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어디에 박혀서 정착 생활을 했다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오늘날 요르단의 페트라에서 가까운 세일 산 서쪽 산지로 추정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주장에 따르면, 하나님은 징계를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 명령에 따라 그를 경외하는 훈련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살던 진영의 중앙에는 성막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을 보호했을 겁니다. 또한 아침마다 만나가 내려 그들에게 탄수화물을 공급했고 저녁마다 메추라기가 내려 그들에게 단백질과 지방을 공급했을 겁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스라엘의 존재가 불가능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40년은 가나안 땅 입성을 고대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 곳에서 생육하고 번성했습니다. 그러니까 40년 후에 1세대가 다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 수는 40년 전과 비슷했겠지요. 하지만 광야에서 죽어간 출애굽 1세대의 수고를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성에 도움이 됩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일컬어 아름다운 땅이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땅을 히브리어로 ‘에레쯔 토바’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란 의미가 되겠지요. 모세는 가나안 땅의 골짜기나 산지에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른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집트는 사막 위에 나일 강이 흘러 형성된 나라입니다. 나일강이 없으면 이집트는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은 도처에서 물이 나옵니다. 광야에 사는 그들에게 이런 땅은 정말 아름다운 땅일 수 밖에 없습니다.

모세는 계속 가나안 땅에 대해서 말합니다. 보고 확실히 말하는 건지 아니면 상상으로 말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그렇다면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이 나온 이집트 땅과 별로 다르지 않은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항상 물 부족을 피부로 느끼며, 만나와 메추라기나 먹고 살아야 하는 그들에게 가나안 땅은 가히 꿈의 궁전입니다. 이제 모세는 이 꿈의 궁전이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의 손에 쥐어졌다고 말합니다. 40년을 광야에서 낮추어진 보람이 있는 겁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의 돌은 철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산에서는 동을 캘 거라고 했습니다. 철과 동으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당연히 무기를 만들겠지요. 아나톨리아 벽지에서 일어난 히타이트 족속이 이집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강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수도인 하투사 인근에 철광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히타이트 족은 인류 최초로 철기 문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철기 문화의 핵심은 철로 만든 무기지요. 당시 다른 어떤 나라도 히타이트의 철로 만든 무기를 당해 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의 돌은 철이라니…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에레브 샤밭을 끝낼 때 인용되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하나님께 귀결시켜 놓습니다. 그러니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이지요. 먹을 것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사실 모든 것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대개 먹을 것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지요. 왜냐하면 그건 당연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깜짝 놀랄 만큼 큰 액수의 돈을 받든가 어쩌다 기가 막히는 기적을 체험해야 비로소 감사할 마음이 생깁니다. 물론 속히 뒤따르는 욕망으로 그 감사할 마음이 여름에 얼음 녹듯 하지만 말입니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지탱해 주는 건강한 먹거리를 앞에 놓고도 하나님께 감사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광야생활 40년을 하게 하셨지요. 이 40년은 기적의 시간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살아 남았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세대교체까지 이루었으니까요. 이것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무엇이 중요한지 처절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의식주가 필요하지만 그걸 모두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신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의식주 말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는 것…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싫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산으로 들어가도 거기는 세상이고, 무인도로 가도 거기도 세상입니다. 수도원? 차이가 있겠지만 거기도 세상이지요. 그렇다고 우주로 날아갈 수도 없고… 우주로 날아가봐야 거기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세상이겠지요. 천국이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교회를 이루고 살아갑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란 의식을 다지는 겁니다.

그런데 교회도 세상 속에 존재합니다. 그러니 세상의 교회 아닌 다른 부분들이 교회에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안가지겠습니까? 그러면서 너희들은 뭔데 그런 식으로 사는거야? 하겠습니까, 안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교회를 이루고 살아도 참 피곤합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교회가 자꾸 부패하거든요. 그래서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자꾸 손가락질을 받거든요. 이런 이유로 우리는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습니다. 심지어 교회 이름을 개혁교회라고 붙였습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부패를 안합니까? 개혁교회가 더 많이 부패하는 모습을 보면 이름 때문에 반사가 일어나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는 세속의 가치관을 깊이 받아들이는 풍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민한 풍조를 소개할까 합니다. 저는 3년 동안 노회 재판국의 책임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 직전에눈 3년 동안 노회 선거관리위원회의 책임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교회 선거에 있어서도 엄청난 세속적 가치관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기서는 재판국에 관한 것만 이야기하겠습니다.

교회에서 문제가 생기면 당회장(대개 담임목사가 겸임)은 당회 안에 재판국을 설치하여 그 문제를 다룹니다. 그런데 당회 재판국에서 결론이 나지 않으면 당회장은 이 건을 노회 재판국에 재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2심, 또는 항소심이라 합니다. 그런데 노회 재판국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으면 관련자는 총회 재판국에 재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3심, 또는 상고심이라 합니다. 그런데 관련자들이 상고심에도 불복하면 드디어 이 건을 세속 법정으로 가져 갑니다.

그런데 세속 법정은 교회법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개교회 공동의회의 결론을 가장 중요시 합니다. 왜냐하면 공동의회는 전체 회원을 망라하기 때문입니다. 세속 법정은 당회나 노회나 총회 등 교회의 대의 정치 체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교회법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말입니다. 그런데 개교회의 공동의회 회원의 자격에 대해서도 세속 법정은 특이하게 거론합니다. 우리는 세례받은 자들을 공동의회 회원으로 봅니다. 그런데 세속 법정은 회비를 낸 자, 즉 헌금을 한 자를 회원으로 본단 말이지요. 세례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결국 이런 판례로 많은 교회들이 외부 세력에게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결과는 어째서 생긴 것인가? 교회가 정부에 굴복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의 누구나 합격하는 목사고시 출신인데 저들은 그 어려운 사법고시 출신이 아닌가… 하는 열등감이 결국 교회를 정부에 종속시키고 말았습니다. 이후 많은 변호사들이 교회의 쟁송 사건을 맡아 짭잘한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경비는 당연히 헌금으로 충당된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항상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세속법이 교회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규정한다면 우리는 그런 규정이 무능하도록 교회법 특히 개교회의 정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법이 세속법의 하위법처럼 되지 않도록 말씀에 의지하여 나름의 권위를 갖는 법체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 교회법의 쟁송법은 세속법의 형사소송법을 그대로 베낀 겁니다. 그렇다면 형사소송법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에게 교회는 굴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굴한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지요.

 

1) 하나님은 우리를 낮추실 때 얼마나 낮추십니까?

2) 우리를 낮추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 때 낮추신 것이 주는 유익은?

 

 

 

2022년 5월 8일

신명기 7장 12-26절: [12]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13]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 [14]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훨씬 더하여 너희 중의 남녀와 너희의 짐승의 암수에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 [15]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 하사 너희가 아는 애굽의 악질에 걸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걸리게 하실 것이라 [1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넘겨주신 모든 민족을 내 눈이 긍휼이 여기지 말고 진멸하며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라 그것이 네게 올무가 되리라 [17] 네가 혹시 심증에 이르기를 이 민족들이 나보다 많으니 내가 어찌 그를 쫓아낼 수 있으리요 하리라마는 [18]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로와 온 애굽에 행하신 것을 잘 기억하되 [1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본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 그와 같이 행하실 것이요 [2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또 왕벌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의 남은 자와 너를 피하여 숨은 자를 멸하시리니 [21]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 [2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 [23]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기시고 그들을 크게 혼란하게 하여 마침내 진멸하시고 [24] 그들의 왕들을 네 손에 넘기시리니 너는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제하여 버리라 너를 당할 자가 없이 네가 마침내 그들을 진멸하리라 [25] 너는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네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올무에 걸릴까 하노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임이니라 [26] 너는 가증한 것을 네 집에 들이지 말라 너도 그것과 같이 진멸 당할까 하노라 너는 그것을 멀리하며 심히 미워하라 그것은 진멸 당할 것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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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렘의 대상은 가증한 우상들, 그리고 헤렘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주시마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의 가나안 행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어떤 일을 행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야 합니다. 그 법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우상숭배 금지입니다.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복을 약속하셨는데 그 치밀함이 가히 하나님의 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훨씬 더하여 너희 중의 남녀와 너희의 짐승의 암수에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 하사 너희가 아는 애굽의 악질에 걸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걸리게 하실 것이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사는 가나안 7족을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 ㅋ히티(헷 족속), 하 끼르까쉬(기르가스 족속), 하 에모리(아모리 족속), 하 크나아니(가나안 족속), 하 프리찌이(브리 족속), 하 ㅋ히비이(히위 족속), 하 여부씨(여부스 족속)였습니다. 여기서 진멸은 ‘ㅋ하람’ 동사를 씁니다. ㅋ하람을 명사로는 ‘ㅋ헤렘’이라 합니다. 지난 주일에도 언급했지만, ‘ㅋ헤렘’ 사상은 토라에 있어 하드코어라 했습니다. 해석하기 어려운 것이란 뜻이지요.  ㅋ헤렘은 ‘인종청소(genocide)’에 해당하는 무서운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시하셨다는 것은 우리로서 참 이해하기 힘든 것입니다. 창조의 여섯 째 날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 뿐만 아니라 그 때 창조된 모든 피조물들을 보시고 좋아하셨던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러실 수가…

그런데 우리는 이 헤렘 사상을 좀 더 깊이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진멸해야 하는 가나안 7족속은 바로와 온 애굽과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안하무인의 존재들로 하나님까지 업신 여기던 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출애굽 제1 세대에게 보여주셨던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다시 사용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애굽은 그 수가 이스라엘 백성보다 많아 이스라엘 백성이 겁을 낼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바로와 온 애굽을 제압하실 때 그들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처럼 가나안 7족속도 제압하실 겁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군대에 앞서 왕벌(찌르아, 호넽)을 보내셔서 그들이 겁을 먹고 미리 파하게 하실 겁니다. 따라서 이 전쟁은 애굽과의 전쟁처럼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전쟁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저 뒤치닥거리나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명기 7장 22절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로 사람들이 없으면 들짐승들이 번성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들짐승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협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이겠지요. 하지만 들짐승 따위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의 위협에 되겠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가나안 7족을 조금씩 쫓아내라고 하신 말씀의 의도입니다. 한꺼번에 진멸시키지 말고, 조금씩 쫓아내라는 말씀… 이 말씀은 혹시 그들까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로 편입을 시키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중다한 잡족을 이스라엘 백성으로 편입시킨 사건을 알고 있습니다. 출애굽 원년 유월절에 이스라엘과 함께 출애굽한 그들은 오순절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결국 이스라엘로 편입이 되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확실하게 진멸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 가나안 사람들이 조각한 신상(프씰레이 엘로헤이헴)이었습니다. 이 신상들은 불살라야 합니다. 나쁜 놈들이 하나님이라고 속이는 물체이지요. 둘째, 신상에 입힌 은이나 금은 탐내지 말고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올무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은이나 금을 취하기 위해 신상을 수집한다… 하나님은 이것을 가증히 여기십니다. 취할 게 없어서 신상의 은이나 금에 눈독을 들여? 셋째,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가증한 것들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멀리하고 심히 미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알량한 수입 때문에 진멸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진멸, 즉 헤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우상들이었습니다. 그 우상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하기 위해 나쁜 자들이 공교히 고안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우상으로 사람들을 겁박하고 옥죄는 자들, 즉 이방 신을 섬기는 왕들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넘기시겠다고 하신 것이지요. 그때 이스라엘은 그 왕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제해 버려야 합니다. 아주 나쁜 놈들이니까요. 그리고 그들은 결코 이스라엘을 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들을 진멸할 수 있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영역 안에서 헤렘을 행하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이 제멋대로 헤렘을 행하는 게 아닙니다.

다시 정리를 해보면, 하나님께서 진멸시키라 하신 것들은 우상들과 우상을 섬기는 왕들이 되겠습니다. 그 외 많은 사람들은 그들과 구분하여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구원해 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과 우상을 섬기는 왕들 앞에서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상이나 우상을 이용하여 독재를 행하는 왕들을  혹시라도 좋게 여겨서 따르게 된다면, 또는 그들의 논리를 받아들여 하나님의 말씀을 오염시킨다면, 이스라엘 그 자신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헤렘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헤렘을 함부로 행한 예와 그 대가에 대해 알아 봅시다.

2) 하나님께서 가나안 사람들을 혐오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어떤 방식으로 가나안 사람과 싸우라 하셨나요?

 


2016년 8월 21일

"위로하시는 하나님"  신명기 8장 1-6절:

[8.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신명기 8장

히브리어로 ‘티샤 브 아브’라 하는 아브 월 9일은 주전 586년과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날로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슬픈 날입니다. 그래서 티샤 브 아브 3주 전인 탐무즈 17일부터 슬픔의 3주간 행사를 가지면서 일체의 향연을 금지하고 회개를 통한 경건에 힘을 씁니다. 그러나 티샤 브 아브를 지나자마자 유대인들은 ‘므나켐 아브’ 즉, 아버지의 위로를 생각하는 순발력을 발동합니다. 마침 이 어간에 주간 성경 읽기인 ‘파라샤트’가 민수기 끝 부분에 이르렀다가 신명기 첫 부분으로 옮아 가는데 그 내용인즉슨, 요단 동편 정복과 모세의 마지막 5주간의 강론 서론에 해당합니다. 티샤 브 아브에 따르는 안식일에 그들은 신명기 읽기를 시작하는 겁니다.

모세는 ‘토라를 다시 생각함’이란 의미의 ‘미쉬네 토라,’ 우리 말로는 신명기를 시작하면서 바알브올에서의 우상숭배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에게 상기 시킵니다. 그러면서 십계명을 다시 강조하고 이 십계명을 ‘쉐마의 말씀’으로 남기라고 권면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들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 여호와가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신 것을 인정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세가 그들에게 남긴 말씀, 즉 십계명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고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십계명을 강론하고, 뿐만 아니라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해야 합니다.

여기서 노파심에 다시 강조해 두지만, 쉐마의 말씀은 결코 신 6.4-9을 외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십계명을 실천하고 십계명을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 강론을 하고 트필린을 달고 메쭈짜를 붙이는 것입니다. 만약 그 안에 십계명이 없다면 강론도, 트필린도, 메쭈짜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신명기는 우리에게 토라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그 토라는 결국 십계명을 말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이 십계명이 결국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다시 강조되고 있습니다. 십계명은 모든 율법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게 십계명의 핵심이라고 하셨지요.

모세가 십계명을 강조하면서 이를 쉐마의 말씀으로 남긴 것은 그것이 주는 복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파라샤트에서 모세는 십계명이 핵심이 되는 율법을 지키면 어떤 복이 따르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1) 살고 번성한다, 2) 가나안 땅을 차지한다, 3) 광야생활도 복이었으니 낮추시고 주리게 하시고 만나를 먹게 하신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귀한 줄 알게 하기 위함었다… 그러므로 복이다… 4) 봐라, 40년 동안 옷이 해어지지 않았고 발이 부르트지 않았다… 권면: 그러므로 사람이 아들을 징계하듯, 아들을 징계하는 게 미워서 징계하는 것이겠느냐… 따라서 여호와의 징계를 아비의 징계로 알고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하라…

광야생활 40년이 바야흐로 1달 남은 시점에 모세는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대한 비전을 심어 주었습니다. 이것은 티샤 브 아브를 맞은 유대인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심어주는 아버지의 사랑, 즉 므나켐 아브가 되겠습니다. 모세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올리브나무와 꿀의 소산지입니다. 광야에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가히 터미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은 그들이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고, 땅의 돌은 철이고, 산에서는 동을 캘 겁니다. 문명을 일굴 수 있는 땅이지요. 이후 안식일 찬양이 나옵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라…" 8.10..

그러나 모세는 이것으로 끝낼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염려가 끊이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또 말합니다. 1)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않으면, 즉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면, 즉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를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 버리는 것이므로 안된다! 2) 소와 양이 번성하며 은금이 증식되어 소유가 풍부할 때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면 안된다! 3) 하나님을 기억하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나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신 분이 바로 하나님 여호와시며 만나를 내려 광야에서 먹게 하셨으니 이는 낮추시며 시험하사 결국 복을 주기 위함이었노라! 4) 만약, 우상숭배를 한다면 반드시 망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멸망시킨 다른 민족들처럼 이스라엘도 결국 멸망시킬 것이니 그 이유는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청종하지 않았다는 말도 로 쉐마를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쉐마는 우리의 생명과 관련합니다.  

                            

1) 쉐마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이걸 제대로 아는 게 왜 중요합니까?

2) 광야생활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주신 가나안 땅은 어떤 땅입니까? 자연환경이 좋다는 의미는 도대체 어떤 의미입니까?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백성이 결국 우상숭배로 끝을 내게 되는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5) 므나켐 아비, 즉 아버지의 위로라는 타이틀을 이 구절에 붙인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6) 쉐마의 말씀이 궁극적으로우리에게 제시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7) 쉐마의 말씀이 방법론적으로만생각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어째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손이 잘생겼네, 손톱이 기네… 한답니까?

 


2012년 9월 2일

신명기 10장 12-21절: [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14]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15]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18]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라 [21] 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 네 눈으로 본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셨느니라.

References  사도행전 10장  9-22절: [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8]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 하거늘 [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21]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이르되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22]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사람도 사랑하여라

 

모세5경이라고 하는 토라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40년 동안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토라는 광야생활의 처음 1년 반과 마지막 1년 반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 들어 있는 37년 반에 대해서는 침묵을 하고 있지요. 왜 그럴까요?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모세는 광야생활을 시작할 때 십계명을 반포했고 또 광야생활을 끝낼 때 십계명을 또 반포했습니다. 같은 십계명이지만 듣는 대상이 달랐습니다. 광야생활을 시작할 때 반포된 십계명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나온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광야생활을 끝낼 때 반포된 십계명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가 들었습니다. 새로운 세대란 이집트에서 나올 때 스무 살이 되지 않았던 사람들과 또한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처음 반포된 십계명은 노예에서 갓 벗어난 사람들이 들었고, 두 번째 반포된 십계명은 39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을 받은 자유인들이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같은 십계명이었지만 받아 들인 결과가 전혀 달랐습니다. 전자의 결과는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반역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자의 결과는 가나안 점령이었습니다. 토라가 이스라엘 백성의 37년 반에 대해 함구함으로써 이 점이 우리에게 아주 선명하게 부각이 됩니다.

지난 주 설교에서 노예 근성에 대해 말씀을 드렸는데, 이 노예 근성이란 게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대대손손이 노예처럼 살게 합니다필리핀 수도 마닐라에 가면 마카티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수영장이 있는 저택들이 즐비하고 현관에는 사설 경비원들이 총을 들고 경비를 설 정도입니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지배자 후손들이나 중국에서 온 부자들이 여기서 살고 있습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자주 인근에 있는 유명 호텔이나 쇼핑 센터에 와서 식사를 합니다. 식사를 할 때마다 하녀들을 대동하고 오지요. 얼마나 거만한지 모릅니다. 로비나 통로에서 떠들어 대고 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녀들을 때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참 웃기는 것은 일반 필리핀 시민들이 그 사람들 앞에서 손을 모우고 정중하게 예의를 표하고 지나 다니는 겁니다. 그래서 필리핀 사람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왜 그러느냐고그랬더니 저 사람들이 우리의 지배자들이고 우리를 먹여 살린다고 하더라고요. 저 사람들 때문에 너희들이 지금도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건 아니냐고 했더니 얼굴을 붉히며 바삐 가더라고요.

여러분, 이게 다른 민족 이야기가 아닙니다. 북한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만약 북한에서 지금이라도 당장 자유 투표를 실시하면 북한 주민의 90%가 김일성 집안 사람을 찍을 거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김일성 집안 사람들이 항상 북한 사람들의 지배자였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김일성 집안 사람이 아닌 다른 집안 사람이 지배자가 된다는 거불안한 거지요. 그래 본 적이 없으니까박정희 정권 이후 여당이었던 공화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이 믿고 있는 것은 35%에 달하는 고정표입니다. 35%는 누가 뭐래도 박정희가 대한민국을 살렸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지금도 박근혜 앞에서 육영수 여사님하면서 눈물을 주루룩 흘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민비 시해 사건 이후 이 나라에 생겨난 국모 시해 정서입니다. 민비나 육영수를 국가의 어머니로 보는 겁니다. 하지만 국모라는 게 왕정국가나 독재국가에나 있을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민주국가에 무슨 국가의 어머니가 있습니까? 김일성 김정일이 죽었을 때 많은 북한 사람들이 울부짖었습니다. 남한에서는 동원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동원된 사람들이 그토록 울부짖을 수는 없다고 보는 게 상식입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지금도 인종차별국가입니다. 흑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음을 당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50년 전에 마틴 루터 킹이라는 목사가 나는 꿈이 있습니다. 우리는 승리합니다라고 하면서 흑인 민권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왜 이 분이 그런 운동을 시작했느냐당시 미국 남부에 있는 아틀란타에서 일어났던 일 때문이었습니다. 40대 흑인 여성이 직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탑니다. 마침 자리가 하나 비어 있어 거기 앉습니다. 다음 정류장에서 20대 백인 남자가 탑니다. 이 남자는 자리에 앉아 있는 흑인 여성에게 다가 와서 백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어나라고 합니다. 흑인 여성이 말합니다. 나는 하루 종일 일을 했기 때문에 피곤하다. 네 요구에 응할 수 없다. 그러자 백인 남성은 흑인 여성의 따귀를 때렸습니다. 버스 안에 있는 모든 승객들이 이것을 목격했고 흑인들은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얼마 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 폭도들 앞에 섰습니다. 일부 백인들이 킹 목사를 위협합니다. 네가 계속 그런 식으로 놀면 너는 죽는다킹 목사는 그런 위협을 아랑곳하지 않았고 결국 암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흑인 민권 운동은 성공을 했고, 그 결과 2008년 오바마라는 흑인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노예 근성은 우리의 능력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까지 받아 들일 수 없게 합니다. 결국 한 민족을 광야에서 배회하다 사라지게 합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모세라는 탁월한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예 근성을 한 세대 만에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흑인들에게는 마틴 루터 킹이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흑인도 대통령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언제 김일성 노예에서 벗어 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남한은 언제 박정희의 유령 통치에서 벗어 날 수 있을까요? 이건 정치의 문제가 아닙니다. 민족적인 자존심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우상숭배와 관련된 신앙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서도 우리의 자유로운 신앙을 박멸하려 드는 게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이데올로기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본디 파라오의 노예로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유인이 된 후에도 노예 근성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노예처럼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대면하시겠다고 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워 떨면서 모세더러 대신 듣고 오라고 했습니다.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겸손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무지의 소치였습니다. 모세가 전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저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는 모세에게 공갈과 협박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어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칼과 불뱀으로 다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노예 근성을 가진 자들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고 토론이 가당치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자유인으로 삼으시고 광야로 이끌어 내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매우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들에게 욕을 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가 그들을 원망하는 것도 못마땅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방이 트인 광야였지만 외적들이 침입할 수 없었습니다. 외적들이 침입할 때는 하나님께서 호넷 미사일을 사용하여 격퇴시키셨습니다. 왕벌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물이 귀한 그곳에서 수시로 수맥을 터뜨리셔서 그들로 하여금 해갈하게 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걸 미리암이 해주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물도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광야는 낮에 매우 뜨거운 곳입니다. 섭씨 50 60도가 넘습니다. 계란을 바위에 깨뜨리면 금방 익어 버립니다. 그런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늘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구름 기둥을 만드셔서 그것으로 뜨거운 햇볕을 가려 주셨습니다. 전기가 필요 없는 자연 쿨러였습니다. 광야는 밤에는 차가워 집니다. 서리가 앉을 정도로 추워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둘러싸고 있는 차가운 공기를 불기둥으로 따뜻하게 덥혀 주셨습니다. 역시 전기가 전혀 필요 없는 자연 히터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죽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이 정도라면 말씀도 안 드립니다. 매일 저녁 메추라기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신선한 단백질과 지방을 섭취하게 하셨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만나를 내리셔서 그들로 하여금 탄수화물을 섭취하게 하셨습니다.  탄수화물이 당분으로 변해 그들에게 하루를 살 수 있는 에너지를 주었습니다.

만약 그때 이스라엘 백성이 자유인으로서 자유를 아는 사람들이었다면 그들은 깨달았을 겁니다. 그들의 생존 방식이 이집트에서와는 아주 다르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생존에 감격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을 겁니다. 그러나 마음이 여전히 노예였던 그들은 그들의 생존 방식이 이집트에서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파라오는 우리에게 신선한 채소와 과일과 심지어 부추와 마늘도 주었는데여기는 이런 게 하나도 없다. 이러다가 우리 모두 영양실조에 걸려서 죽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호들갑을 떨면서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노예의 특징은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주는 대로 먹고 주는 대로 입고 주는 대로 잡니다. 먹고 입고 자는 것만 문제지 다른 건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게 문제가 되면 언제든지 하나님을 떠나서 이집트로 돌아가 다시 파라오의 노예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모세는 이런 사람들과 39년 동안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에게도 희망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세대가 생겨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추와 마늘 같은 게 없긴 했지만 새로운 세대는 형성이 되고 있었습니다.

자유인에게 주는 메시지 사랑하라

새로운 세대를 향한 모세의 메시지는 자유인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그네를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나그네가 누구입니까? 바로 이집트에서 나그네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를 향해서 이스라엘을 사랑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고아와 과부를 위해 정의를 행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고아와 과부에 대해 특별한 대우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고아와 과부는 동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정의를 행하시는 사람들이므로 우리는 동등한 입장에서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그들이 왜 고아와 과부가 되었겠습니까? 파라오가 그들의 아버지와 그들의 남편을 징집하거나 징용을 했기 때문입니다. 고아와 과부는 독재자의 억압의 피해자들이요 또한 상징입니다. 파라오는 그 고아와 과부에게 아무 것도 해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파라오의 이익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파라오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충성을 맹세하곤 했습니다. 아무 유익이 없는 어리석은 우상숭배를 계속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파라오와 180도 다른 조치를 하셨습니다. 이집트를 떠난 고아와 과부들을 향해 특별하게 정의를 행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아와 과부를 특별하게 대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모세는 120세가 되어서야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알게 된 셈입니다. 참으로 평생이 걸린 깨달음이었습니다. 모세는 죽을 때가 되어서야 어떤 인간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 중요한 것을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가 그 소중한 깨달음을 전달한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는 이집트를 나올 때 스무 살도 안된 어린 것들이었습니다. 또는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라야 이제 겨우 60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전 세대와 달랐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로서 명실상부한 자유인이었습니다. 노예 근성을 청산했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무서워하기 보다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서 정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사랑할 수도 있는 여유로운 사람들로 변모 되었습니다. 이런 자들이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누가 되겠습니까?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통일을 이루겠습니까? 이데올로기를 복음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회가 어떻게 사회의 소금과 빛이 되겠습니까? 문제나 일으키지 않으면 다행이겠지요.

요즘 많은 북한 사람들이 탈북을 해서 그 가운데 극히 일부가 남한으로 들어 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모험을 감행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북한에서는 먹고 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탈북하는 과정에서 부모 형제를 잃기도 합니다. 믿기 힘든 사실이지만 탈북을 하다가 사살 당하기도 한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탈북자들 가운데는 돈을 벌어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각박해서 살 수가 없다는 겁니다. 오늘날 북한 난민들이 우리에게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도 정의로 행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 주어야 되겠습니까?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사도행전 10장에 기록된 고넬료 이야기를 생각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넬료는 로마식 이름인 코르넬리우스의 우리 식 발음입니다. 고넬료는 로마군인이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따지면 왜정시대 일본군 장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 보편적인 유대인들은 고넬료 같은 사람들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야 말로 제국주의의 첨병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황제는 자신을 태양신이라고 주장했고 로마 군인은 그런 태양신의 하수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유다 지방에 배치되었다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고 싶어 했습니다.

그 즈음에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에게 묘한 계시가 떨어졌습니다. 비몽사몽 간에 하늘에서 광주리 하나가 떨어졌는데 거기에는 코셔로 사용할 수 없는 고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이런 고기를 먹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내가 깨끗하게 한 것을 네가 더럽다고 하지 말라그 즈음에 베드로는 고넬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로마 군인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넬료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랬더니 고넬료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도 모두 세례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태양신인 황제를 섬기던 우상숭배자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성경은 여기까지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따르면 사도 바울보다 먼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사람은 베드로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베드로를 로마에 초대해서 복음을 증거하게 한 사람이 바로 고넬료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바티칸 언덕에 바울 성당이 아니라 베드로 성당이 들어서게 된 이유라고 합니다. 물론 로마에 바울 성당도 있습니다. 하지만 로마라고 하면 역시 성 베드로 성당이지요. 보편적 유대인이었던 베드로는 로마 군인인 고넬료와 가깝게 지내는 것이 편하지 못했을 겁니다. 더구나 베드로는 독립 운동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동족으로부터 매국노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일을 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고넬료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민족적 자존심이나 이데올로기를 능가합니다. 왜냐하면 완벽한 자유인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리이고 하나님의 인간 창조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모세처럼 승리했습니다. 그래서 비스가 산 위에 모세의 이름이 빛나듯이 바티칸 언덕에 베드로의 이름이 빛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짧은 생애에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먹고 입고 자는 문제에 과도한 신경을 쓰다가 의미 없이 죽을 것입니까? 아니면 이데올로기나 출세를 지향하며 피곤하게 사시겠습니까? 우리도 모세나 베드로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완벽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특히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정의롭게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입니다

질문

1)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살면 어떤 복을 받는지 정리해 봅시다.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이방 왕들을 정복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3)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 가운데 특별히 모세가 잊지 않도록 촉구한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4) 조상들의 불순종으로 받은 벌을 헤아려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 한국인들의 조상들이 잘못한 것으로 지금 우리가 곤란을 겪는 게 무엇입니까? 이것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5) 하나님께서 새로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한국 교회의 새로운 세대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6) 이집트와 비교하여 가나안은 어떤 땅입니까?

7) 이스라엘 백성은 종합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8) 모세는 두번째 돌판의 계명을 어떤 방법으로 실천하라고 가르쳤습니까?

9) 우리는 두번째 돌판의 계명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겠습니까?

 


2011년 8월 14일

하나님의 전쟁

신 7.12-26: [12]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13]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 [14]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훨씬 더하여 너희 중의 남녀와 너희의 짐승의 암수에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 [15]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 하사 너희가 아는 애굽의 악질에 걸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걸리게 하실 것이라 [1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넘겨주신 모든 민족을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고 진멸하며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라 그것이 네게 올무가 되리라 [17]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이 민족들이 나보다 많으니 내가 어찌 그를 쫓아낼 수 있으리요 하리라마는 [18]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로와 온 애굽에 행하신 것을 잘 기억하되 [1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본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 그와 같이 행하실 것이요 [2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또 왕벌(Hornet)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의 남은 자와 너를 피하여 숨은 자를 멸하시리니 [21]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 [2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 [2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기시고 그들을 크게 혼란하게 하여 마침내 진멸하시고 [24] 그들의 왕들을 네 손에 넘기시리니 너는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제하여 버리라 너를 당할 자가 없이 네가 마침내 그들을 진멸하리라 [25] 너는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네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올무에 걸릴까 하노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임이니라 [26] 너는 가증한 것을 네 집에 들이지 말라 너도 그것과 같이 진멸 당할까 하노라 너는 그것을 멀리하며 심히 미워하라 그것은 진멸 당할 것임이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여러 가지 모자란 점들이 있었지만 그 중심은 하나님을 향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복을 주며 번성케 하시겠다는 언약이었습니다. 이 언약에 따라 하나님께서 실천하신 것이 출애굽이었고 또한 가나안 전쟁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출애굽과 가나안 전쟁을 하나님의 전쟁이라고도 부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하나님의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한 일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부분은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셔서 전쟁을 하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뒤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구경만 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는 것,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다른 어떤 것도 믿지 말고 하나님만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원하셨습니다. 따라서 우상숭배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지요.

요즘도 하나님의 전쟁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랍 사람들은 지하드라는 거룩한 전쟁을 수행한다면서 테러를 행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 지하드를 수행하고 있는 지는 두 가지만 검토해 보면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해 어떤 약속을 하셨기에 그들은 그 전쟁을 하는 것인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수행하시는 전쟁이므로 구경만 해도 이기고 있는 전쟁을 하고 있는지... 이게 확인이 안되면 그것은 하나님의 전쟁도, 지하드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이용한 야욕에 불과한 것입니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에서 인디언들을 정벌할 때 헤렘 신학을 주장했습니다. 그게 정말 헤렘 신학을 주장해도 되는 전쟁이었는 지는 그들 스스로 잘 알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떤 약속에 근거한 것인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이 신대륙에서 인디언들을 몰살시킬 때도 근거로 사용할 수 있는 언약인지,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인디언을 정벌했는지 아니면 유럽의 우월한 전투력으로 정벌을 했는지... 그러면 헤렘인지 침략전쟁인지 분간할 수 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보다 먼저 왕벌을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떤 무기를 나타낸다기 보다 하나님의 징벌적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능력, 즉 왕벌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가서 전리품을 걷는 것 이외는 달리 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왕벌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세금을 걷지도 않으십니다.

미국의 F-18 호넷: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왕벌이 전투기일 수도 있을까???

남북통일도 하나님의 전쟁으로 이루어 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조종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전쟁이 되려면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구경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언약을 하셨는지 검토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면 이 세상에서의 삶이 윤택해 진다

모세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인도 해 주셨는지 계속 말을 합니다. 그리고 아주 엄하게 당부 합니다. 그것은 가장 중요한 열 가지의 토라, 즉 십계명을 잘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다른 토라들도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토라를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오래 살게 하고 많은 농산물을 거두고 또한 가축들이 번식을 잘 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백성을 칠 때는 한 가지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지혜나 무기를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기도를 하면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도와 주실까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왕벌을 보내서 숨어 있는 가나안 군대를 찾아내어 그들에게 독침을 쏘게 하십니다. 이 독 때문에 가나안 군인들은 눈이 멀게 되고 결국 패배를 하게 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배불리 먹고 살 게 되면 식사 후에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이 권면은 훗날 모든 식사를 위한 감사의 토라가 되었습니다.

십계명 회고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처음으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계명이 너무 많아서 이스라엘 백성은 지키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성은 모세에게 하나님께 중재해 달라고 했고 모세는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파이어로 된 두 개의 작은 판에 십계명을 새겨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산 기슭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 우상이 출애굽을 성공시켰다면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멸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을 위해서 간구했지요.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모세는 특별히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과 하신 약속을 상기해 주십사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참기로 하셨답니다. 모세는 당장 산기슭으로 내려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백성이 우상 숭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격노해 십계명 판을 던져 버렸습니다. 모세는 금송아지 형상을 없애 버렸고 그 재를 물에 타서 우상 숭배를 한 사람들에게 먹였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은 그 잿물을 먹고 죽었답니다. 모세는 다시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또 40일 동안 하나님께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모세는 다른 십계명 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훗날 이 십계명 판은 법궤에 넣어 보관했습니다. 욤 키푸르 때 모세는 이 새로운 십계명 판을 들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왔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벌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들이 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까지 모두 알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마음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방인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된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방인이지만 토라를 지키기로 약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런 이방인을 존중해야 합니다. 이들은 토라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는 가나안 땅은 나일강이 비옥하게 해 주는 이집트의 땅과 비교해서 아주 달랐습니다. 가나안 땅은 산악지대가 많으며 비가 와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것이 바로 비를 얻을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깨닫게 하기 위해서 홍해를 가르고 만나를 내려 주시고 다단과 아비람에게 벌을 주셔서 땅 아래 묻히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토라를 간직하고 그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고 제때에 비를 주시고 추수를 많이 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목장을 비옥하게 하시고 조금 먹어도 만족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토라를 지키지 않고 우상을 숭배한다면? 그 반대로 벌이 주어 집니다.

질문과 대답

 

1)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은 어떤 것들입니까?

2) 7.20의 왕벌은 누구 또는 무엇을 말합니까?

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40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4)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주리기도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5) 우리가 농사 지은 것을 먹어 배부른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6) 9.4-5는 이스라엘 백성과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7) 모세가 두번째로 십계명판을 받을 때 나무 궤를 하나 만들어서 가지고 올라 갔다고 신명기는 말합니다. 그 이유를 이야기해 봅시다.

8)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복이 됩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9) 하나님의 전쟁에 대해 규정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