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19

Ex. 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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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16일

"번제단"

출애굽기 27장 1-8절: [1] 너는 조각목으로 길이가 다섯 규빗, 너비가 다섯 규빗의 제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높이는 삼 규빗으로 하고 [2]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이어지게 하고 그 제단을 놋으로 싸고 [3]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제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4] 제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 고리 넷을 만들고 [5] 그물은 제단 주위 가장자리 아래 곧 제단 절반에 오르게 할지며 [6] 또 그 제단을 위하여 채를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쌀지며 [7] 제단 양쪽 고리에 그 채를 꿰어 제단을 메게 할지며 [8]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게 하라.

제단 (미즈뻬야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메노라를 만들라고 하신 다음, 성막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막을 이루는 휘장과 그 부속품들을 만들라고 하신 겁니다. 성막의 휘장은 모두 10폭인데 각 폭의 길이는 28암마, 너비는 4암마였습니다. 이에 대해 자 세히 알고 싶으시면 출애굽기 26장을 읽으십시오. 이렇게 해서 지어진 성막은 길이 가 30암마, 너비가 10암마, 높이가 10암마입니다. 성막의 넓이는 300평방암마입니 다. 성막의 길이 30암마 중 지성소의 길이가 10암마, 성소의 길이가 20암마입니다. 그러니까 성소가 지성소보다 2배가 큽니다. 휘장으로 둘러싸인 성막의 면적과 그 주 변에 있는 성막 부속 뜰의 면적을 합치면 길이가 100암마, 너비가 50암마이니 5000 평방암마입니다. 이 면적 속에 300평방암마의 휘장에 둘러싸인 성막이 들어가 있는 것이니 그 부속 뜰은 12배가 넘는 것이라 제법 넓었습니다. 성막의 부속 뜰을 바깥과 구분하는 방법은 출애굽기 27장 9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막의 부피에 대해 서는 다음에 논하기로 합니다. 이후 하나님은 제단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제단을 히브리어로 ‘미즈뻬야흐’라고 하 는데 이것은 ‘자바아흐’ 동사에서 온 것으로 죽이다, 죽여서 바치다란 무시무시한 뜻 을 갖고 있습니다. 제단도 역시 조각목으로 만들지만 법궤나 슐한과 달리 금이 아니 라 놋으로 쌌습니다. 그러나 법궤나 슐한보다 컸습니다. 길이와 넓이가 5암마씩이니 정방형입니다. 높이는 3암마였습니다. 생각보다 작은 규모였지요. 그리고 네 모퉁이 에는 각각 뿔을 만들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 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모두 놋으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아울러 놋으로 그물을 만들어서 네 모퉁이에 설치된 놋고리에 걸되 제단 높이의 반쯤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제단은 속이 비어있었습니다. 그래야 그물 밑에 장작을 넣 어 불을 피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물 위에는 당연히 희생제물이 놓이겠지요. 이게 타면서 하나님께 올리는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시 제단도 움직일 수 있도 록 채를 만들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휘장이 쳐진 성막의 동쪽 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 저 보이는 것이 제단이었습니다. 그 뒤로 너른 뜰 가운데에 우뚝 선 성막이 보였겠지 요. 그런데 제단까지는 일반인들이 갈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일반인들은 갈 수 없었 습니다. 성막은 어디까지나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의 구역이었습니다. 일반인들은 하나 님께 희생제물을 드리고 성막의 뜰을 나와야 했습니다. 그 제물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은 제사장을 통해서 들어야 했습니다. 그게 출애굽 시대의 신앙생활이었습니다.

 

2020년 8월 9일

"메노라"

출애굽기 25장 31-40절: [31] 너는 순금으로 등잔대를 쳐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결하고 [32] 가지 여섯을 등잔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다른 세 가지는 이쪽으로 나오고 다른 세 가지는 저쪽으로 나오게 하며 [33] 이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쪽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같게 할지며 [34] 등잔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35]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며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며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게 하고 [36] 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결하여 전부를 순금으로 쳐 만들고 [37]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38] 그 불 집게와 불 똥 그릇도 순금으로 만들지니 [39] 등잔대와 이 모든 기구를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40]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너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   

출애굽기 27장 20-21절: [20]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21]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두 번째로 호렙산 꼭대기로 부르셨습니다. 그때는 오순절 후 40일이 지났을 때라고  추정합니다. 호렙산 꼭대기로 올라가던 모세는 짙은 구름을 만나 6일 동안 어둠에 갇혀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7일째가 되던 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 번째로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은 성막에 관련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가르쳐 주신 것이었습니다. 성막 관련 율법을 통해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말씀하신 것은 성막을 짓는 데에 필요한 모든 재료들을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기증을 받으라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오로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만 기증을 받으라고 하신 겁니다. 이집트 백성도 아니고 미디안 백성도 아니고 오로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서만 기증을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에게 기증할 수 있는 것들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주지 않으신 것을 달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맡겨 놓으신 것이 없이 내놓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당신과 상관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기증하라는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당연히 기증을 받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것은 은혜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특권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라기는, 우리의 삶에서 그 은혜와 그 특권이 더욱 더 확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후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법궤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 법궤는 실로 사과궤짝만 했습니다. 조각목을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궤짝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사과궤짝보다 더 천박하게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하나님은 거기에다 금박을 입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윗부분에 금테를 두르고 순금으로 뚜껑을 만들어서 덮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금궤같이 보일 수 있겠네요. 하지만 진짜 금궤보다는 훨씬 더 저렴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안에다 십계명판을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위에 임재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법궤의 뚜껑에 임재하시는 하나님… 그것을 쉐키나라고 합니다. 조각목 궤짝의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출세를 한 것입니다. 아무튼 법궤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법궤 다음으로 떡상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떡상을 히브리어로는 슐한이라고 하는데 식탁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딘너 테이블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이 슐한은 법궤보다 더 작았습니다. 이런 슐한에서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슐한도 역시 조각목으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깥쪽으로 금박을 입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슐한에는 할라빵을 열 두 개나 올리라고 하셨습니다. 여섯 개씩 두 줄을 놓으라고 하셨지요. 안식일마다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일용할 양식을 책임지신다는 의미가 들어있다고 합니다. 양식을 책임져 주는 분이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요? 일용할 양식을 내가 매일 책임져야 한다면 이게 얼마나 부담스럽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책임져 주십니다. 이게 슐한이 지닌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슐한을 만든 다음에, 등대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등대라 하면 등잔과 청소도구가 모두 포함되는 개념입니다. 이 등대를 히브리어로 메노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슐한과 메노라는 법궤가 놓여진 지성소가 아니라 지성소를 표시하는 휘장 밖의 성소에 놓여집니다. 이것은 슐한과 메노라는 법궤와 비교하여 차원이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영역에 놓여지지만, 슐한과 메노라는 하나님을 섬기는 인간의 영역에 놓여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슐한과 메노라는 여전히 성소 안에 놓여지는 것입니다. 지성소에 있는 것 만큼 귀하지는 않아도 성소에 있기 때문에 버금가게 귀하고 또한 거룩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메노라를 만들 때 한 달란트의 순금으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달란트는 로마식 단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설마 모세에게 로마식 단위인 달란트로 말씀하셨을까요. 히브리어 성경은 킥카르란 단어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킥카르는 원반 하나를 만들 때 들어가는 금붙이의 양입니다. 지름은 한 1미터쯤? 그러니까 메노라는 법궤나 슐한처럼 조각목에다 금박을 입힌 게 아니고 그 자체로 순금덩어리였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크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모세에게 메노라에 대해 말씀하실 때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호렙산 꼭대기에서 메노라의 원형을 본 것입니다.

메노라는 성소에 놓이지만, 뒤에 있는 휘장만 거두면 지성소에 놓인 법궤 바로 앞에 위치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 바로 앞에 서있는 모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메노라의 모습은 불이 붙지 않는 떨기나무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말 성경 본문은 메노라가 살구나무 형상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살구나무라 했지만, 히브리어 성경은 쉬카딤 나무라고 했습니다. 쉬카딤 나무는 아몬드 나무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쉬카딤 나무에 꽃이 활짝 핀 모습으로 메노라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메노라를 떨기나무 형상이니, 살구나무 형상이니, 이렇게 복잡하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메노라는 쉬카딤 나무가 꽃을 활짝 피웠을 때의 모습이라고 하면 됩니다. 이것도 설명을 하다보면 더 어려워지는 케이스입니다.

쉬카딤, 즉 아몬드 나무가 꽃을 활짝 피웠을 때… 그 때는 한겨울입니다. 우리의 1월 말이나 2월 초에 해당하지요. 우리나라에 있는 살구나무는 5월에 꽃이 핍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쉬카딤 나무가 꽃을 활짝 피운 모습으로 메노라를 만들라고 하신 것은 그 의미가 있습니다. 동이 트기 전에 메노라에 불을 밝히라는 의미지요. 쉬카딤 나무가 한겨울에 꽃을 피우는 그것을 상징화한 것입니다. 그래서 메노라는 다른 무엇도 아닌 쉬카딤 나무의 형상이고 쉬카딤 나무의 이미지라고 해야 합니다. 이 이미지를 구태여 우리 식으로 살리려면 살구나무보다 동백나무가 더 낫습니다. 동백나무가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메노라는 아무리 봐도 동백나무의 형상은 아니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냥 쉬카딤 나무처럼 생긴 메노라…라고 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이 하나 생기지요.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말씀하시기를,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들을 섬기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런데 쉬카딤 나무의 형상으로 메노라를 만들라고 하시다니…  이것은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 위배되는 게 아닌가…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만든다는 것은 거짓이고 사기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겁니다. 하지만 다른 것들의 형상은 우리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에 절하거나 섬기거나 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우리는 조각을 즐길 수 있고, 부조를 만들어 장식에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인형이나 동물의 모양을 만들어서 즐길 수도 있고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으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형상이든 그것이 절하고 섬기는 대상이 아닌 다음에야 우리가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은, 거짓말 하지 말라, 사기치지 말라는 의미 외에 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함부로 고정시키거나 딱딱하게 규정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명령을 판에 새겨서 법궤에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법궤 위에 쉐키나로 임재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법궤를 고정시키지 않고 채에 꿰어 메고 다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는 곳이면 법궤도 함께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가는 곳에 하나님의 말씀도 함께 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멀리 계신다고 말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까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도외시하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간적인 판단 저 너머에 계신 분이시며 절대적인 창조주이시지만 우리에게서 결코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하면서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쉬카딤 나무가 꽃을 활짝 피웠을 때의 형상대로 만든 메노라…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은 그 의미를 살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매일 새벽 동이 트기 전에 메노라의 불을 밝혀야 합니다. 쉬카딤 나무가 일년 중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이기 때문에, 메노라의 불도 하루 중 가장 먼저 피어 올라 어두움을 밝혀야 합니다. 여기서 대제사장과 제사장들… 즉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의 수고가 요구됩니다. 사람들의 수고가 요구되기 때문에 메노라는 지성소가 아니라 성소에 위치하는 겁니다.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메노라를 분해하고 청소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조립하고 거기다 순전한 올리브 기름을 붓고 불을 붙여야 합니다. 동이 트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끝나야 합니다. 아무튼 메노라는 청소할 때 외에는 불이 항상 켜져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메노라의 불을 가리켜 ‘영원한 불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의 순종과 수고가 만들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영원한 불꽃을 지키기 위해서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해야 하는 수고가 또 있습니다. 그들은 순전한 올리브 기름을 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메노라에는 순전한 올리브 기름만 넣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올리브 기름이라 하지 않고 감람유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올리브와 감람은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리브를 감람이라고 하면 안됩니다. 올리브 기름은 그으름이 잘 생기지 않습니다. 감람유는 그으름이 많이 생기지요. 그리고 메노라는 성소에 위치합니다. 성소는 사방이 막힌 텐트 안에 있습니다. 사방이 막힌 텐트 안에서 메노라는 항상 불을 밝혀야 합니다. 그래서 그으름이 생기지 않는 연료를 써야 합니다. 그게 바로 순전한 올리브 기름이 되겠습니다. 순전한 올리브 기름이란 한 올리브 나무가 처음으로 맺는 열매들을 거두어 짜서 만든 기름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 기름은 귀한 것이고 희소가치가 높습니다. 이것을 구하기 위해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은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나중에는 예루살렘 성전 동쪽에 있는 산에다 올리브 나무 밭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산의 이름이 하르 하쪼핌, 즉 올리브 산이 되었습니다. 이걸 또 우리말 성경은 감람산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올리브와 감람은 다른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의미 때문인지 메노라를 생명나무와 연관을 시키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명나무가 무엇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서 이를 아쉬워 하시면서 언급하신 나무가 바로 생명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를 에덴 동산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에덴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들의 열매를 따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산 중앙에 있는 한 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고 하셨지요. 그리고 그것을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나무는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고 그 열매가 바로 선악과였습니다. 이게 사과나무라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어떤 특별한 이미지를 가진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하쉬의 꼬임에 빠져서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보니 나하쉬의 말대로 자기가 정녕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는데 말이지요. 하와는 그의 남편 아담에게도 선악과를 주어 먹게했습니다. 아담도 정녕 죽지 않았습니다. 나하쉬와 하와는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릅니다. 직접 명령을 받은 아담도 정녕 죽지 않는 것을 보니, 우리가 하나님을 이겼다…고 하면서…

하지만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결국 그것으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의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그래서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고 합니다. 참으로 아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메노라를 생명나무에다 비끄러 맸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그렇게 비끄러 맨다고 그게 매지겠습니까? 그럴 수 없지요. 메노라와 생명나무 이야기는 유대인의 신비주의인 카발라에서 다루어 질 뿐입니다.

그러나 메노라와 생명나무가 연결되면서 교훈이 생긴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게 무슨 교훈일까요?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에덴동산 전역을 돌아다니며 모든 것들을 다스렸고 거기서 삶에 필요한 것들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생명나무에 대해 아는 게 없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었어도 곧장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참… 아쉽다… 여러분도 이런 생각을 하십니까?  물론 아담과 하와도 생명나무에 대해 알았더라면 그랬을 겁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유익한 일은 하고 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에덴동산에 생명나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언급하신 생명나무는 무엇이란 말인가… 생명나무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신 후에 무척 아쉬워 하시면서 내뱉으셨던 그 말씀 속에 들어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생명나무는 에덴동산이 아니라 에덴동산을 지으신 하나님의 입 속에 들어있었단 말입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고 여전히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았더라면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입 속에 들어가서 언급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러므로 저는 생명나무란 정녕 죽음을 맞이하게 될, 하나님께서 무척 아쉬워 하시는 아담과 하와의 본래적 표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을 받은 인간이란 피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으로서 우주적 공간을 다스리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몫인 선악의 문제에 뛰어들면서 참으로 유감스럽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메노라의 영원한 불꽃을 위해서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들이는 수고에 대해 관심을 가져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수고가 어떻게 법궤 위에 임하는 쉐키나를 움직일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유익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요한계시록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다시 생명나무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두루 도는 불칼을 거두어 들이시고 우리로 하여금 쉽게 에덴동산으로 들어가게 하실 겁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성막의 종합적 결론에 이를 때에 말씀드릴 수 있을 겁니다. 생명나무는 결국 나와 너의 문제가 됩니다.     

지난 주간은 우리가 우중에서 방황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참 많은 비가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장마 대신 우기가 왔다고 하더군요. 한반도에서 장마가 사라졌다고 하던 사람들이 머쓱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문에 한반도 전체가 큰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춘천에서 가슴 아픈 일이 생겼습니다. 수초섬이 뭐라고 그걸 구하겠다고 행정선이 뛰어들고 그 행정선을 구하겠다고 구조선이 뛰어들어 실종자와 사망자를 낸 것입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산사태가 나서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방역당국이 교회에 대해 엄한 행정지침을 내렸습니다. 예배 외에 모임을 갖지 말라는 겁니다. 화정에 있는 어떤 교회서 확진자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 목사는 왜 다단계에 가서 병을 옮아왔을까요? 돈이 궁했던가 봅니다. 아무튼, 전 세계의 코로나19 확진자는 2천 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미국과 브라질과 인도가 반을 차지합니다. 미국은 500만으로 전 세계 확진자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3억의 인구를 가진 아프리카는 진단 키트가 없어서 검진이 1% 밖에 이루어 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의 감염자 숫자가 제대로 밝혀지면 확진자 수는 엄청나게 늘어날 거라고 합니다. 일본의 경우, 코로나19가 창궐했는데도 불구하고 국내여행 장려를 하다가 하루에도 천 명, 천 육백 명의 확진자를 내고 있다고 합니다. 8.15를 전후해 엄청난 인구 이동이 있을 텐데 코로나19 방역을 위해서 이보다 나쁜 뉴스는 없다고 일본 방역당국이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수해로 정신이 없을 때 대서양 서쪽에서는 강력한 허리케인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카리브해와 미국의 동부지방을 강타했습니다. 이번 허리케인의 파괴력은 역대급이었다고 합니다. 코로나19와 허리케인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미국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오로지 재선에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빈축을 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상대방이 너무 약체라서… 게다가 레바논 베이루트에서는 도시의 반을 날려버린 폭발사고가 있었습니다. 몇 년째 항구에 쌓아 놓고 방치하던 2천 7백 톤의 질산암모늄에 불이 붙어 폭발한 것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이게 왜 여기에 이토록 오래 있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레바논 정권이 위태한 실정입니다.

전 세계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아우성입니다. 도무지 재난을 이겨낼 방법이 없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메노라 관련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메노라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수고하여 빛을 내라고 합니다. 그 빛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소망을 갖도록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침 일찍,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서, 메노라를 청소하고 거기에 순전한 기름을 넣고 불을 붙여야 합니다. 그러면 메노라가 빛을 내서 갈 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갈 길을 알려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메노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금박을 붙여서 만드는 게 아니라 금덩어리를 빚어서 만들어야 합니다. 활짝 꽃이 핀 쉬카딤의 형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만들어 놓고는 거기에 불을 붙여야 합니다. 불을 제대로 붙게 하기 위해서 메노라를 분해해서 청소를 해야 합니다. 저는 이게 교회 안팎을 청소해야 한다는 말로 인식이 됩니다. 교회의 하드웨어에 코로나19가 붙지 않도록 방역을 하고 청소를 하듯이 교회의 소프트웨어도 방역을 하고 청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흥이니 성장이니 하는 시장논리에서 벗어나서 복음의 논리를 따라야 합니다.  메노라에는 순전한 올리브 기름을 부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으름이 덜 나겠지요. 복음의 논리가 바로 순전한 올리브 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의 논리는 투박하고 거칠지만 깨끗하고 순수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꺼이 수고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일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복음의 논리대로, 순수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순종하며  일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메노라의 불은 바로 뒤에 있는 법궤 뚜껑에 임재한 쉐키나에 영향을 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 위치가 그럴 수 밖에 없거든요. 쉐키나는 우주를 창조하시고 또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나무란 화두를 던져주셨지요. 우리가 에덴동산으로 회귀할 때 두루 도는 화염검을 제거해 주실 유일한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메노라를 만들고 거기에 순전한 올리브 기름을 붓고 영원한 불꽃을 올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한 두 번 하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에덴동산에 다시 들어갈 때까지 계속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메노라를 분해해서 청소하는 일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으름 없는 불이 항상 타오르겠지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겁니다. 바로 그 분을 생각합시다. 그리고 그 분 때문에 소망을 잃지 맙시다.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진,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잇는 소중한 사람들을 귀하게 생각하고 사랑합시다. 여기서 우리의 새로운 임무가 시작될 것입니다. 아울러 새로운 행복이 찾아올 것입니다.

 

2020년 8월 2일

"금박을 입힌 법궤와 금으로 만든 송아지 형상"

출애굽기 25장 10-22절: [10]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1] 너는 순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두르고 [12]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고 그 네 발에 달되 이쪽에 두 고리 저쪽에 두 고리를 달며 [13]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14]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15]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내지 말지며 [16]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17]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8]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끝에 쳐서 만들되 [19] 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 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애굽기 31장 18절 - 32장 6절: [31.18] 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32.0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0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0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0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0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0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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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출애굽기 25장에 나오는 금으로 만든 법궤에 대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31장에 나오는 금으로 만든 송아지 형상에 대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부득이 신약의 말씀은 읽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출애굽기의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을 서로 연결시켜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신약의 레퍼런스를 읽는 것보다 유익하다고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금으로 만든 법궤 이야기와, 금으로 만든 송아지 형상의 이야기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공통점… 법궤나 송아지 형상이나 모두 금으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금은 아주 귀한 것이지요. 태양계에서 만들어지지 않는 물질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금은 먼 우주에서 날아든 것으로 태양계가 생길 때 지구에 조금 딸려 온 것입니다. 금은 좋은 성질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고대로부터 물질의 가치를 따질 때 금을 기본적인 단위로 삼아왔습니다. 지금도 나라의 부를 측정할 때 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를 따집니다.

금으로 만든 법궤 이야기와, 금으로 만든 송아지 형상의 이야기에 있어서, 그 두 번째 공통점… 모두 이스라엘 백성이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출애굽을 했고,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도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살아났고, 심지어 하나님의 율법까지 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겠다고 선서까지 했지요. 그런데 그들이 십계명판을 넣어두는 법궤를 만들었고, 아울러 하나님께서 극도로 싫어하시는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금으로 말이지요. 금송아지 우상은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이제 자세하게 이 두 가지 이야기들을 들여다 볼까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두 번째로 호렙산으로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장로 70인과 더불어 올라오라고 하셨지요. 이후 하나님은 모세만 호렙산 꼭대기로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출 24.12)

이 돌판을 히브리어로 ‘루호트 하 에벤’이라고 합니다. 돌로 만든 판이란 뜻이지요. 유대인들은 이 돌은 그냥 돌이 아니고 ‘사파이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후 하나님은 이 돌판을 ‘에두트’라고도 하셨습니다. 에두트는 증거, 약속, 언약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이것을 증거판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언약을 돌판에 기록하셨으니 그것은 영원한 증거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출애굽기 32장 15절에 따르면 모세는 호렙산에서 내려 올 때, 두 증거판을 손에 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작은 노트북 두 개 정도의 크기와 무게였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는 글자가 기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다시 말해서 십계명은, 두 판 두 면이 아니라 두 판의 앞뒤, 즉 네 면에 기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증거판, 또는 십계명판 그림을 그릴 때 잘 그려야 하겠습니다.

모세가 호렙산 중턱까지 함께 올라온 일행과 헤어진 뒤, 7일만에 호렙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뵈옵고, 40일 40야를 그 곳에 있으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성막에 관련한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주신 율법은 성막에 필요한 물품들을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기증 받으라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은 법궤에 대한 율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조각목으로 궤를 하나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조각목을 히브리어로는 ‘슅타’라고 합니다. 주변에 널려있는 작은 아카시아류 나무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나무들을 건축자재로는 쓸 수가 없습니다. 건축 자재로 쓰기에는 너무 작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슅타 나무는 단단해서 여러 개를 모아 묶어서 사용하면 제법 강한 힘을 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불에도 잘 견딘다고 합니다. 법궤의 기본재료는 조각목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법궤의 크기는, 길이가 두 규빗 반, 넓이는 한 규빗 반, 높이도 한 규빗 반이었습니다. 한 규빗이란 한 뼘의 길이를 말합니다. 대개 15-20센티미터쯤 됩니다. 그러니 법궤의 크기가 참 작았습니다. 대략 나무로 만든 사과 궤짝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잘 볼 수 없지만 제가 어릴 때는 사과 궤짝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만한게 사과 궤짝이었습니다. 사과 궤짝을 찬장으로 사용하는 집도 있었고 또 쓰레기통으로 사용하는 집도 있었습니다. 이게 법궤의 크기였습니다. 우리 주님이 나실 때 뉘어졌던 구유도 그 크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조각목으로 법궤를 만들기는 하지만, 그 궤의 안팎을 금박으로 두르고, 또한 윗쪽에 금테를 두르라고 하셨습니다. 금박과 금테는 당연히 순금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금으로 고리를 만들어서 이쪽 저쪽 두 개씩 붙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서 그것을 금으로 싸고 궤 양쪽 고리에 걸어서 어깨에 멜 수 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법궤는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궤를 만든 다음에 그 위에 금으로 뚜껑을 만들어서 덮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말 성경은 속죄소라고 번역했습니다. (출 25.17) 그러나 속죄소는 엄청난 의역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그저 ‘키포레트’로 되어 있습니다. 뚜껑이란 말이지요.

하나님은 키포레트 위 양끝에다 천사의 형상을 각각 만들어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천사의 얼굴은 서로 마주하게 하되 아래를 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천사의 날개 끝은 서로  이어지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출 25.20) 이렇게 하면 벱궤의 뚜껑과 두 천사가 만드는 형상으로 인하여 반원의 빈 공간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이 반원의 빈 공간에 임재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주보 1면에 이 그림이 있습니다. 저 작은 공간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모세와 만나겠다고 말씀하셨고 또한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곳에 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 이것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몰트만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우리가 법궤를 묵상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처럼 겸손하고 또한 신비하다는 뜻입니다.

사과 궤짝만한 크기의 법궤… 그것은 조각목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체로는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기다 안팎으로 금박을 입히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보잘 것 없는 조각목 궤에다 순금을 입혔습니다. 그랬더니 조각목 궤가 금 궤처럼 되었습니다. 값지고 멋있어 보였겠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그 안에다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판을 넣었습니다. 십계명을 넣은 금궤… 그것이 법궤가 되었습니다.

사과 궤짝만한 조각목 궤… 여기에 순금으로 옷을 입히고 그 안에다 십계명판을 넣었더니 이것이 역사상 가장 귀한 법궤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우리가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육체가 하나님 앞에 설 때 변화하여 귀한 사람들이 됩니다. 그 귀한 사람들의 내면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만드시는 겁니다. 이후에도 하나님은 성막에 관련한 또 다른 율법들을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아브 월이 가고 엘룰 월이 시작되는 8월 20일까지 이에 대해 대충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모세가 호렙산 꼭대기에서 40일 동안 체류하고 있을 때 호렙산 기슭에서는 소란이 일었습니다. 모세 유고… 모세 유고라는 얼토당토 않은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이런 말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이었습니다.“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모세란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한다.” 모세가 어찌 되긴 어찌 되었겠습니까? 호렙산 꼭대기에서 율법을 받고 있었지요. 함께 호렙산에 올랐던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장로 70인도 모세가 곧 내려올 것이라고 말했을 겁니다. 그러나 거짓 뉴스를 만들어 내는 자들에게 그것은 소 귀에 경 읽기 였습니다.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계획이 서있었거든요. 이집트로 돌아가는 계획…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들도 출애굽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홍해를 건너고 수르 광야에서 마라와 엘림을 경험했고, 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으며, 르비딤에서 샘이 터진 것도 봤고,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이긴 이유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오순절에 나타난 하나님도 경험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세가 40일 동안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모세 유고!라는 가짜 뉴스를 퍼뜨려서 이스라엘 백성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옛날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저희들이 권세를 누렸던 때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출애굽 의지를 정면에서 꺾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출 32.1.상)” 하나님의 섬세한 인도를 받고나서도,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자들일까요? 이들은 모세가 없는 동안 모세의 자리를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의도대로 민중을 이끌어 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을 만들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중을 버리시겠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랬던 게 아닙니다. 그들은 출애굽부터 호렙산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체험했지만 그것을 종교적 현상으로 치부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희망과 비전으로 제시하지 않고 엄한 현실로 과도하게 부각시켜 패배감을 갖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신이란 만들어진 것이라는 철학을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필요하다면 또 다른 신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악한 생각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나왔다는 게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모세의 형이요 대제사장이 될 아론의 말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2장 21절 이하를 보면, 모세가 아론을 추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째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어주었냐… 그러자 아론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아론의 대답에 따르면, 그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다 어쩌다 보니 금송아지가 만들어져서 눈 앞에 있더라… 비겁한 변명이지요. 실제로는 신을 만들어 달라는 사람들에게 아론 자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내와 자녀의 귀에 있는 금고리를 빼어내 가져오라…” 그들이 금 귀고리를 모아오자 아론은 그 금 귀고리를 녹여서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금송아지 내부는 나무였다고 합니다. 누군가 커다란 나무의 둥치를 깎아서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고 아론은 그 위에다 금도금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금방 없애 버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론의 죄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송아지 형상이었을까… 이집트에서, 특히 이스라엘 백성이 살던 고센 땅에서, 사람들은 소를 신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특히 아피스라는 황소의 신이 최고의 신이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라 해도 소를 숭배하는 생각은 쉽게 고칠 수 없었던가 봅니다. 유대인들 가운데는 금 송아지 우상숭배 사건에서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송아지 형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어떤 형상으로 나타내지 말라는 계명을 어겼다는 겁니다.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을 만든 겁니다.

그런데 아론은 어째서 부녀자들의 금 귀고리를 가지고 오라고 했을까요? 여자들의 귀고리가 특별히 거론된 것은 당시 여자들의 귀고리는 모두 우상의 형태로 제작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귀고리가 귀를 뚫어서 매다는 것이라서 이런 설명도 덧붙여지곤 합니다. 모세가 호렙산에 첫 번째로 올라가서 받아 온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이 중 한 가지 율법, 즉 출애굽기 24장 5절 이하의 율법에 따르면, 가족 때문에 자유하길 원치 않는 종이 있으면, 그 종은 스스로 송곳으로 귀를 뚫어서 주인에게 영원히 예속되었다는 표시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론은 귀고리를 가져오라고 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이 없어 우리를 헷갈리게 합니다. 그래서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이 율법은 자유를 바탕으로 사랑의 예속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론이 한 짓은 우상숭배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를 분명히 하고 지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이 참 크고 많다는 것입니다. 그 예가 이스라엘 백성이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이 매우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 금은 대개 이집트 사람들로부터 가져 온 것이지요. 출애굽기 3장 2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 하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빈손으로 출애굽 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400년 동안 받지 못한 품삯을 한꺼번에 받게 하셨습니다. 조상의 몫까지 받게 하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 해서 손해 본 게 뭐가 있습니까? 오히려 분에 넘치는 은혜를 받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조상의 몫까지 엄청난 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우리가 받지 않았습니까?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그러므로 돈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 많은 금으로 하나님의 십계명판을 보관하는 법궤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이스라엘 백성이 그 많은 금으로 송아지 형상도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금으로 우상숭배를 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할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우상숭배를 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형인 아론조차 그런 시험에 빠졌더랬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의 죄에서 우리도 자유할 수 없습니다. 우상숭배로 인하여 어려움에 빠졌을 때,  중요한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9장 20-21절에서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 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 너희의 죄 곧 너희가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찧고 티끝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금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그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70인 장로를 통해서 호렙산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호렙산 중턱에서 70인의 장로들은 하나님을 만났고 그 앞에서 먹고 마셨지요. 이에 대해 듣고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우상숭배자가 된 사람들은 금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놓고 그 앞에서 먹고 마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심한 행동을 했습니다. 뛰놀았다고 거지요. 광란의 우상숭배 축제를 벌인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경건하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하고 광란하며 뛰노는 것은 우상숭배일 가능성이 100%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질서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미쳐 날뛰는 것을 아시고 모세에게 호렙산을 내려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상숭배자들을 강력하게 응징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상숭배로 인해 죽은 자들이 3000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이 바로 레위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막을 지키는 레위인들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 민중 사이에 놀라운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상숭배자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계수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신을 섬기는 자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상숭배란 말은 여전히 남아있게 되었는데, 그 의미는 달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닌, 제 뜻대로, 또는 제멋대로 하는 것으로 개념 정리가 되었습니다. 훗날 사울 왕이 제멋대로 했지요. 그래서 그를 우상숭배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실수를 많이 했지만 여전히 존경하지요. 왜냐하면 그의 마음이 하나님과 합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합한 사람이 그렇게 실수를 많이 해? 하나님은 그 실수들을 하나 하나 헤아리시고 그에게 죄과를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습니다. 이게 훌륭한 점이지요.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우상숭배는 제 멋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멋대로 하는 것은 탐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은 말하기를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탐심이 곧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탐심은 헬라어로 ‘플레오넥시아’입니다. 어떤 일을 완력을 써서라도 해치우려는 그런 마음을 말합니다. 예수님도 누가복음 12장 15절에서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 데에 있지 않다고 하시면서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도 탐심은 헬라어로 플레오넥시아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탐심이 생명도 헤칠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까지 해칠 수 있는 일… 그게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말하는 우상숭배의 진정한 의미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사야서 57장 17절에 따르면 탐심은 죄악으로 패역해서 자기 길로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탐심은 히브리어로 ‘뻬차아’를 씁니다. 뻬차아 역시 부정한 이득을 얻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게 다 우상숭배와 관련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참고로, 금송아지 우상숭배자들을 응징한 때가 언제인가… 오순절 이후 40일이 지난 때인가… 아니면 80일이 지난 때인가… 유대인들 가운데는 오순절 이후 40일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야 탐무즈 17일과 연결이 되고, 슬픔의 3주간과 연결이 되고, 아브 월 9일 성전 파괴와 연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의미론적으로는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때가 오순절로부터 80일이 지난 때가 아닌가 합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80일이 지난 때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는 해도 성경의 기록이 연대기나 역사로만 해석하기는 어렵지요.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니만큼…  그러므로 여러분도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호렙산 등정을 자세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첫 번째 등정, 두 번째 등정, 세 번째 등정의 특징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보기에는 두 번 올라간 것 같은데… 하면 그대로 생각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결론을 내기가 어려울 겁니다. 성경의 난제들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렙산 등정과 율법의 전수… 이게 4300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무슨 관계가 있는지 단박에 정리되는 상쾌함을 느끼게 되실 겁니다.

 

2020년 7월 26일

"모세는 두 번째 호렙산 등정 때 하늘의 성소를 보았다."

아브 9 (티샤 아브) 금식일

올해 7 22 화요일 일몰부터 성경의 다섯 번째 달인 아브 월이 시작됩니다. 아브 가장 의미있는 날은 티샤 아브 금식일이라 하는 9일입니다. 날은 탐무즈 17일에 시작된슬픔의 3주간 끝나는 날입니다. 올해 티샤 아브 금식일은 7 29 일몰부터 30 일몰까지입니다. 유대인들은 우상숭배의 때문에 결국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것을 슬퍼하며 금식하고 기도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에 의해, 주전 959(왕상 6.1-38) 둘째 달에, 번째, 1 성전이 지어졌고, 스룹바벨에 의해, 주전 516( 6.15-18) 아달 3일에, 번째, 2 성전이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너진 날이 같습니다. 1 성전은 주전 586 아브 9일에, 이교도인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무너졌고, 2 성전은 주후 70 아브 9일에, 역시 이교도인 로마 군대에 의해서 무너졌습니다. 바로 아래 그림은 주후 70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린 로마군인들이 성전에 있던 메노라를 로마로 가져가는 모습입니다. 부조는 지금도 로마의 개선문에 붙어있습니다. 그림으로 메노라의 크기와 무게를 측정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2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는 지금까지 성전아 재건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그들을 넘기시매 그가 와서 그들의 성전에서 칼로 청년들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병약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하나님의 전의 대소 그릇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며 그들의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들의 모든 귀한 그릇들을 부수고  칼에서 살아 남은 자를 그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의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통치할 때까지 이르니라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대하 36.17-21)” 제1 성전이 무너질 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탄식했던 것이 이후 650여 년이 지난 뒤 제2 성전이 무너질 때도 똑 같이 통할 수 있었습니다. 회개는 어려운가 봅니다. 그러니까 일생 회개만 생각하고 살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정상적인 유대인들은 파티를 열지 않고 결혼식도 하지 않는다는 슬픔의 3주간은 오순절로부터 40일이 지난 탐무즈 17일에 시작하여 아브 9일에 끝는데 기간을베인 메짜림이라 합니다. 근거는 예레미아 애가 1.3 근거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브 9일이 끝나면 바로쉬바 드느켐타라고 하는위로의 7주간으로 들어갑니다. 티샤 아브가 끝나자마자 시작되는 위로의 7주간은 엘룰 말까지 진행됩니다. 엘룰 월의 마지막 6일은창조의 6입니다. 그러니까 위로의 7주간은 티샤 아브 금식일이 끝나는 일몰에 시작해서 유대 신년인 로쉬 하샤나가 시작하기 직전 일몰에 끝나는 겁니다. 이때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영광에 관련한 구절들을 읽습니다. 슬픔은 3, 위로는 7…. 그들의 승리는 보장이 되어 있습니다.

번째 호렙산 등정에서 모세가 받은 율법

모세는 오순절에 호렙산에 올라갔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율법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론 3부자와 이스라엘의 장로 70인과 함께 번째로 호렙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때가 오늘날의 유대인들이슬픔의 3주간 시작할 때인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스라엘의 장로 70 등은 하나님의 발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래 싸파이어처럼 푸른 하늘이 펼쳐진 것을 보았습니다. 이후 하나님은 모세에게만 호렙산으로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여호수아를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중도에 짙은 구름을 만났고 6 동안 곳에서 시간을 보낼 밖에 없었습니다. 7일째 되는 드디어 하나님께서 구름을 여시고 모세가 하나님 앞으로 올라오게 하셨습니다. 이후 모세는 40 40야를 그곳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40 40야를 머물렀다는 것은 밤잠도 자지 않고 율법을 받았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금식은 물론이고우리가 도무지 상상할 없는 것이지요.

아무튼, 40 40 동안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율법은 출애굽기 25.1-32.18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막에 관한 율법, 제사장직에 관한 율법, 희생제물로 드리는 예배에 관한 율법 등이 내용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세는 하나님께서 직접 싸파이어 판에 새겨주신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속에서 아브 월에 관계된 모든 일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모세가 슬픔의 3주간이 시작되는 때에, 탐무즈 17 즈음에, 번째로 호렙산에 올라가서 율법을 받고 40 만에 내려왔으니, 그는 아브 말까지 호렙산 정상에 머물러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그때 받은 율법이 성전의 전신인 성막에 관련한 것이었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모세가 성막에 관련한 율법을 받을 즈음, 미래의 티샤 아브 금식 사건이 생길 아브 9일이 지나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 9일이 지나가자마자 위로의 7주간을 갖습니다. 성전이 무너졌어도 성막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언제나 당신의 백성과 함께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은위로입니다. 성전 파괴를 생각하며 슬픔의 3주간을 보내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위로의 7주간을 보내게 하신다그런데 모세의 번째 호렙산 등정은 바로 기간에 있어 슬픔과 위로를 함께 경험한다이것은 오늘날도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성전 파괴 이후의 위로는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시는 메시야에 의해 주어지는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점에서 슬픔의 3주간은 위로를 기대하는 슬픔의 3주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복음이며 복음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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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수요일 일몰부터, 티샤 브 아브 금식일이 시작됩니다. 이 날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날입니다. 그래서 성전 신앙을 지니고 있는 유대인들은 이 날을 가장 슬픈 날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날부터 유대인들은 위로의 7주간을 갖습니다. 티샤 브 아브에 금식을 하면서 슬픔의 정점을 찍은 다음, 슬픔의 3주간을 마무리 합니다. 그리고 곧장 위로의 7주간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로의 7주간을 가지면 한 해가 끝나는 겁니다. 곧바로 티슈리 1월, 즉 로쉬 하샤나가 시작이 되지요. 그러므로 그들이 말하는 위로의 7주간은 사실상 영원한 위로를 말하는 게 됩니다. 슬픔의 3주간으로 영원한 위로를 얻는 것이지요.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 몸이 성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태여 티샤 브 아브의 금식일을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티샤 브 아브의 교훈 하나를 얻을 수는 있습니다. 우상숭배를 하면 하나님을 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잃은 삶…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우상숭배에 대해 아무리 경계를 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산상수훈을 묵상하면서 우상숭배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상숭배라고 하면 당장 마태복음 6장 24절이 떠오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가장 강력한 우상은 재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재물 우상은 모래와 같은 것입니다. 금방 흩어질 수 있는 것이란 말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모래처럼 쉽게 흩어지는 재물 위에다 우리 집을 지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홍수가 나도 꿈쩍도 하지 않는 반석 위에다 우리 집을 지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반석을 재미있는 방법으로 해석하셨습니다. 바니야스 수련회 때 바요나 시몬이란 제자는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베드로란 이름을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헬라어로 페트루스, 즉 반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 위에 우리 집을 지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엄청난 어려움이 생겨도 우리는 우리 집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 죽지 않고 살아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티샤 브 아브 금식일을 맞아서 이것 하나는 꼭 기억해 두면 좋겠습니다. 우상숭배는 곧 파멸이고 죽음이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곧 승리이고 영원한 생명이다!

 

출애굽한 그 해 오순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로 호렙산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아갖고 내려왔습니다. 오순절이 40일쯤 지난 어떤 시점에, 모세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장로 70인과 더불어 호렙산에 올라갔습니다. 모세로서는 두 번째 호렙산 등정이었습니다.  그들은 호렙산 중턱에 머물면서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만 꼭대기로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이후 모세는 호렙산 꼭대기에 40일 동안 머물면서 두 번째 율법을 받았습니다. 이 두 번째 율법은 성막에 관련한 율법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출애굽기 25장부터 31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율법은 분량이 가장 많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율법은, 출애굽기 25장 9절과 40절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것을 정리한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파란 하늘에 마치 슬라이드처럼 성막의 모습과 예배 드리는 모습을  모세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주셨다는 말입니다. 머리가 좋고 기억력이 좋으며 또한 분석력과 통합력이 있었던 모세는 호렙산에서 내려 온 후에 그것을 땅 위에다 실제로 구현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기록으로도 남겼습니다.  

성막은 성전의 전신이 되는 것이지요. 성막은 광야생활 40년 동안 닳고 닳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 시대에 이르면 법궤만 남아있게 됩니다. 이를 뼈아프게 생각한 다윗은 성전을 지을 생각을 하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만류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 이르러 성전은 결국 모리아산의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세워지게 됩니다. 이때가 주전 959년 둘째 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은 주전 586년 아브 월 9일, 바벨론 군대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성전은 주전 516년 아달 월 3일에 스룹바벨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성전은 주후 70년 아브 월 9일, 로마 군대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가 성막에 관련한 율법을 받았을 때가 출애굽하던 해, 즉 주전 1313년의, 아브 월 9일 전후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대략 600년 후로 볼 수 있는, 주전 586년 아브 월 9일에, 제 1 성전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파괴가 되었다는 말이고, 이로부터 또 대략 600년 후인, 주후 70년 아브 월 9일에, 제2 성전이 로마 군대에 의해서 파괴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유대인들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계속 우상숭배를 하다가 지금에 이르러 성전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600년만의 일을 어떻게 교훈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네셔널지오그래픽 8월호를 보면 1세기마다 전염병의 팬더믹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인간은 여기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무런 대책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전염병에게 당하고 있다고 한탄을 합니다. 1세기의 일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게 인간인데 6세기의 일을 아무리 유대인이라 해도 어떻게 대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상숭배에 대해 민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떤 길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좀 복잡한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세운 시설이 성전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성전이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점은 우리 신앙의 선배들도 일찌감치 깨달은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일찌기 시편 기자는 시편 69편 9절에서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라는 말을 했습니다. 요한복음 2장 16-17절에 따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후 시편 69편 9절을 기억했다고 합니다. 돈이 되기 때문에 쏟는 성전에 대한 열정은 곧 우상숭배로 연결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교회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특히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1장 13절, 마가복음 11장 17절, 누가복음 19장 46절에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성전을 강도의 소굴이라고까지 말씀하신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시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19절 말씀입니다.

지금은 제2 성전이 파괴된 지 50년 모자라는 2천 년 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아직도 제3 성전을 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반드시 모리아산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지어야 하는데 지금 그 자리에 이슬람교의 엘 앜사 사원이 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위해서 엘 앜사 사원을 허물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게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지구상에 매우 어려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점은 대단히 우려스러운 것입니다.

모세가 두 번째로 호렙산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은 성막을 지으라고 하시면서 관련 율법을 좌르륵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막을 만들 재료들을 모우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모우는 방법은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기증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성막 안에 성소가 있으니 그 곳은 하나님께서 거할 곳이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장차 모세가 만든 성막 안 성소에 계실 겁니다. 그러므로 그 곳은 그대로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는 곧 하늘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호렙산 꼭대기에서 모세에게 하늘에다 성막을 나타내시고 그것을 보게 해주셨다고 했지요? 그러면서 보여주신 그대로 땅에다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단 말이지요. 그런데 이게 가능한 명령인지…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의문은, 성막의 재료를 기증 받으라고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런 값진 것들이 있었을까요?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기증받으라고 하신 것은 금과 은과 놋이었습니다. 놋은 구리를 말하지요. 금과 은과 구리는 태양계에서 생성되는 물질이 아닙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귀한 물질이란 말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들을 기증받아서 성막 안의 각종 기물을 제작하고, 심지어 못이나 이음쇄 등으로 만들어서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 등도기증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각종 실은 성막의 휘장과 벽과 거기에 새길 각종 무늬를 만들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 등은 햇빛과 습기를 막되 통풍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지붕과 벽에 덧대기로 사용할 것입니다. 조각목은 뜨거운 기물을 보호하는 용도로 사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료와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을 기증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은 성막 의 기물들과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의 정결을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또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들도 기증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보석들은 대제사장 예복의 가슴 부분에 수 놓을 때 사용될 것입니다. 보석은 모두 열 두 개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상징하게 될 것입니다. 그 안쪽 주머니에는 우림과 둠밈이 있게 됩니다. 우림과 둠밈은 호마노로 만들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에 사용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물품들은 대충 봐도 귀하고 비싼 것들입니다. 하늘의 성막을 땅에 세우는 것이니 그런 귀한 것들을 사용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다가 나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런 것들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런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런 물품들을 이미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집트를 떠날 때 하나님은 이집트 사람들에게 짙은 어두움을 주신 적이 있지요.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사람들의 집마다 들어가서 귀하고 비싼 물품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400년 동안의 품삯을 한꺼번에 받게 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주인이 세 사람에게 각각 5 달란트, 2 달란트, 1 달란트를 맡기고 어디론가 가서 오랜 후에 돌아왔습니다. 그때 5 달란트 받은 사람은 10 달란트를 들고 왔습니다. 2 달란트 받은 사람은 4 달란트를 들고 왔습니다. 받은 것들을 열심히 활용해서 배를 남겼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1 달란트 받은 사람은 오로지 1 달란트만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 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마태복음 25장 25절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하나님은 심은 데서 거두시고 헤친 데서 모우신다는 취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하나님은 계산에 있어 정확하신 분이십니다. 사도 바울도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6장 7-8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그래서 하나님은 재료를 기증받을 때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셨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내는 것들만 받으라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올 때 들고나온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의 것만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이지요. 기쁜 마음… 히브리어로 ‘나다브 레브’라고 합니다. 기증의 의미를 이해해서 자발적으로 기꺼이 내고자 하는 그런 마음을 일컫는다고 해석이 되어 있더군요. 그렇습니다. 나다브 레브… 의미를 알고 기꺼이 바치려는 마음… 이것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단 한 가지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성막을 만들라고 하신 것은 성막 건축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막을 만들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기쁜 마음을 표현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기쁜 마음 속에 들어오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400년 동안 노예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이제 그들은 노예생활을 끝내고 주인이 되기 위해 가나안 땅으로 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게 그들이 잘났기 때문에 되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노예에서 벗어나 주인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것을 알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으셨던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쁜 마음으로 가져온 물질로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모세가 두 번째 호렙산에 올라갔을 때 주신 율법은 무엇에 관한 율법이었습니까?

2) 출 25.40에 따르면 모세는 하늘에 나타난 무엇을 보았습니까?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3) 성막 건축을 위한 재료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이것들을 어떻게 모아야 합니까?

4) 기뻐하는 마음에 대해 말해 봅시다.

5) 이 말씀이 오늘날 예배당 건축에 어떻게 이용되고 있습니까?

 


2017년 3월 5일

"성막은 움직이는 거야!"

출애굽기 25장 10-22절: [10]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1] 너는 순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두르고 [12]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쪽에 두 고리 저쪽에 두 고리를 달며 [13]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14]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15]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내지 말지며 [16]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17]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8]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19] 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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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는 윤리와 예배와 비전을 다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 예배와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배를 위해 이런저런 물건들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 물건들이 합쳐지니 성막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몇 가지 의미를 담은 기구들을 만들어서 성막 안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3장에서 언급되는 기구들은 법궤와 속죄소와 떡상과 메노라입니다. 속죄소는 사실 법궤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인데 우리에게는 법궤의 뚜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뚜껑이 열리면 우리는 법궤 안에 있는 십계명판을 볼 수 있겠지요. 그리고 이 기구들은 대부분 순금으로 만들거나 순금을 입히거나 했습니다. 그리고 모양도 쉬카딤처럼 하는 등 그저 봐도 무슨 의미인지 알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성막과 그 안에 둘 기구들을 만들기 위해 예물(테루마)를 가져오게 하되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의 예물만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헌금 또는 예물의 원칙을 알 수 있습니다. 꼭 필요한 것만을 광고하되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의 것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제시된 모양을 따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장막이 기구들보다 먼저 나오는군요. 그렇지요. 장막을 먼저 지어놓아야 기구를 만들어 그 안에 둘 수 있으니까요. 모세는 브살렐과 오홀리압 등 재능있는 사람들을 시켜서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설계도대로 장막과 도구들을 만들었습니다. 호렙산 꼭대기에서 모세는 그 실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장막 속에 기구들이 들어가면 드디어 성막이 되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성막의 이동성입니다. 하나님은 기구마다 고리 넷을 달고 조각목으로 만든 채를 양쪽 고리에 끼워서 사람들이 멜 수 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법궤와 떡상은 물론 메노라도 그렇게 만들었을 겁니다. 고리를 만들고 그 고리에 채를 꿰고 사람들이 멜 수 있게 한 것은 이동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동식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목적지가 호렙산 기슭이 아니라 가나안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호렙산에서 가나안 땅으로으 이동은 필수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동하기 쉬운 방법으로 각종 기구를 만드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다윗이 마련하여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위 위에 지은 굳건한 붙박이 돌집이었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성전을 지으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어떤 목적에 따라 자발적으로 지은 것이지요. 자발적이라 하나님께서 받아주긴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은 많은 문제를 일으켜 결국 무너지고 말았고 다시 지은 제2 성전도 결국 또 다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모세가 만든 성막도 결국은 없어지고 말았지요. 그러나 성막의 이유는 우리에게 성전과는 다른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동할 수 있었던 광야시대의 성막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이유를 갖는 겁니다.

우리의 삶도 결국 붙박이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이동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이 세상은  내가 잠시 사는 곳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많은 공을 세우고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천 년 이상을 산다는 야쿠시마 삼나무에 비하더라도 우리의 삶의 연수는 찰라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의 모든 문제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붙박이처럼 살면 안정감이 있고 일정한 삶을 살 수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안일한 삶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안일하게 산다고 근본적인 고민이 없어지나요? 근본이 찰라적 인생인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붙박이로 산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이동식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성전적인 신앙생활보다 성막적인 신앙생활이 우리에게 요구된다는 말씀이지요. 힘들고 낯설어도 그게 원칙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동식인 성막적인 신앙생활이란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삶을 말하는 걸까요?  

1) 하나님께서 장막을 짓고 기구를 만들라고 하셨지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일의 순서를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됩니까?

2) 그런데 만드는 방법에 대한 설명은 기구가 먼저이고 장막이 그 다음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3) 이교도들이 섬기는 우상들과 하나님의 백성이 사용하는 성막 안의 물건들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들이 무엇입니까

4) 메노라의 원형인 쉬카딤에서 얻는 이미지가 무엇이며 그 이미지가 메노라를 어떻게 설명합니까?

5) 우리에게 이동식 신앙생활이 필요한 이유를 생각해 보고 실천할 항목을 정해 봅시다.

 


2016년 2월 14일

"예물을 가져오되..."

출애굽기 25장 1-9절: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테루마)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3]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4]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5]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6]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료와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7]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성소를 지어라 [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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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두 번째로 시내산에 올랐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예배와 관련한 계명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 하나 다 보여주셨습니다. 모세는 천상의 것을 지상에 만들어야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지상에서 그것들을 만들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예물을 바치게 하라! 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의 예물만 받아라…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9장 7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것이요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이것은 당연히 오늘날에도 헌금의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바치지 않았다고 암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모세 시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예물을 바친것에 대해 우리가 좀 더 알아봐야 할게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엄청난 물량의 예물을 바쳤습니다. 가짓수도 대단했습니다. 금, 은, 놋, 청색 자색 홍색 실, 가는 베실, 염소털,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 해달의 가죽, 조각목,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료,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 호마노,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 하나님께서는 아무거나 값나가는 물건을 받으라 하지 않으시고 어떤 일을 하는데에 꼭 필요한것들만 콕 집으셔서 그걸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마음에 정한대로 기쁘게 바치는것만 받으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가져온 예물들은 대충 봐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환가치가 큰것들인데 노예로 살던 그들이 이런걸 어디서 얻었을까요? 물론 재치있는 자들이 출애굽을 앞두고 모아두었을 가능성을 부정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출 12.35-36의 기록을 무시할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바친 예물은 출애굽때 하나님께서 애굽사람들로부터 빼앗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것들 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친 예물로 성소의 각종 기물, 성막 그 자체, 제단, 제사장 예복 등을 만들게 하셨고 모세는 그 명령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결국 출애굽하던 해 마지막 달, 즉 아달 월 23일에 성막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7일 동안의 시험가동을 하고 출애굽 제2년 니싼 월 1일, 그러니까 정월초하루에 성막을 오픈했습니다.

1)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을 히브리어로 ‘테루마’라고 합니다. 테루마의 원칙이 무엇입니까?
2) 우리가 가진것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았으나 내가 노력해서 얻은게 무엇입니까?


2012년 2월 26일

출애굽기 25장 10-22절: [10]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1] 너는 순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두르고 [12]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쪽에 두 고리 저쪽에 두 고리를 달며 [13]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14]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15]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내지 말지며 [16]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17]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8]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19] 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두 천사의 날개 아래가 속죄소. 예수님이 누우셨던 말구유의 크기

 

References 히브리서 9장 23-28절: [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테루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 세 번에 걸쳐서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80세란 노구를 이끌고 세 번이나 호렙산 또는 시내산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산에 올라갔다고 합니다. 매번 40일씩 그곳에 머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율법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처음 하나님의 산에 올랐을 때는 70인의 장로들과 함께 올랐다고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말 성경에 법규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미쉬파팀을 주셨습니다. 미쉬파팀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윤리 규정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또 80세란 노구를 이끌고 하나님의 산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늘나라의 그 무엇을 보여 주셨다고 합니다. 코발트 색 들판 위에 세워져 있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무엇을 자세히 보고 그대로 땅에다 재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무엇을 히브리어로는 미쉬칸이라고 합니다. 우리 말로는 성막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 23절은, 모세가 하나님의 산 꼭대기에서 본 것을 하늘에 있는 것들이라고 했고, 모세가 이 땅에 세운 성막을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라고 했습니다.

산에서 내려 온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막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성막을 만들려면 여러 가지 재료가 필요했습니다. 금과 은과 놋과 청색 홍색 자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료와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 등이었습니다. 이 재료들을 히브리어로는 테루마라고 합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예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테루마를 우리 말로 예물로 번역하면 2프로 부족한 의미가 되는 게 아니라 50프로가 부족한 의미가 되고 맙니다. 예물은 내가 가지고 있던 나의 것을 고귀한 분에게 바치는 걸 말합니다. 그런데 테루마는 고귀한 분으로부터 내가 받았던 것을 잘 보관하고 있다가 그 고귀한 분이 돌려 달라고 하실 때 즉시 돌려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4대에 걸쳐 살았습니다. 파라오로부터 숙식만 제공받으며 평생을 노예로 살았습니다. 안식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애굽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보물을 요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열 가지 재앙을 경험한 이집트 사람들은 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보물만 요구한 것은 약소한 것이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모든 걸 다 주어야 했습니다. 보물은 물론이고 있는 재산도 다 주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긴 자가 요구하면 생명이라도 주어야 했고, 그들의 노예로 사는 게 마땅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자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집트 사람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삼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땅을 점령하고 이집트 사람들을 내쫓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오히려 이집트를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에게 이건 매우 고마운 처사였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이 지니고 있던 모든 보물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순순히 내어 준 것도 이런 고마움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집트 사람들로부터 보물을 얻어내라고 하신 것은 어떤 계획을 위해 그 보물을 일부 사용하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계획이란 바로 성막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막을 지을 재료를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테루마였습니다.

테루마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하나 가르쳐 줍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잠깐 맡겨 두신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그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이집트 땅을 포기하게 하셨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을 노예로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도 포기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가나안 땅은 이집트 땅에 비하면 매우 불리한 땅이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곳으로 가서 주인 노릇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비옥하고 풍요로운 이집트 땅은 이스라엘 백성이 거할 곳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곧 망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으로 낮의 더위를 막아주셨고, 불기둥으로 밤의 추위를 막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메추라기 고기를 먹게 하셨고, 아침에는 만나를 먹게 하셨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끊임없이 의식주를 제공하셔서 그들로 생명을 부지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엄청난 보물이 있었지만 그걸 팔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간직할 뿐이었지요. 그러다 모세가 성막을 짓는다고 하자 사람들은 간직하고 있던 보물을 바쳤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작은 일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 온다고 모세로 하여금 이제 그만 가져 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주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신다면 헌금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헌금은 받은 것 일부를 돌려 드리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주시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뭘 돌려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받은 게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헌금하지 마십시요. 그리고, 헌금을 통해 하나님께 투자를 하거나 보험을 들지 마십시오. 이것도 헛짓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야 내가 안심이 된다, 내가 하나님께 복채를 바치면 더 많은 것을 주실까그래서 헌금을 한다면 이것은 테루마가 아니고 뇌물입니다. 하나님은 뇌물을 받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의 본질입니다.

성막은 Move!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엄청난 규모의 신전을 보았습니다. 피라미드나 스핑크스도 보았습니다. 모두 엄청난 석조 구조물로, 태양신과 살아있는 신인 파라오를 위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성막을 짓자고 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파라오의 신전보다 더 큰 신전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집트 태양신의 신전이 저 정도라면, 창조주 하나님을 위한 신전은 엄청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신전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바치리라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성막의 크기라야 일산의 이층집 수준이었습니다. 성막의 핵심이 되는 법궤는 그 크기가 고작 사과궤짝만 했습니다. 어찌 이걸 하나님의 신전이라 할 수 있겠는가그러나 하나님은 신전을 지으라 하지 않으시고 성막을 지으라 하셨습니다. 게다가 성막은 붙박이가 아니었습니다. 신속하게 철거하고 신속하게 나르고 신속하게 조립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소녀그룹 시크릿이 부르는 사랑은 무브, 사랑은 무브라는 노래가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막은 무브, 성막은 무브였습니다.

이집트에서 거대한 신전만을 봐 온 이스라엘 백성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보잘 것 없는 성막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보잘 것 없는 성막은 사실 하늘 나라에 있던 것의 모형이었습니다. 모세가 두번째로 하나님의 산 꼭대기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성막의 원형을 보여 주셨습니다. 코발트 색 하늘 위에 오롯하게 성막의 원형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에 따르면 그 성막의 원형은 예수님을 이해하기 쉽게 만든 하나님의 구조물이었습니다.

성막은 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이 되었니다. 뜰에는 제단이 있어서 희생제물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뜰에서 제물을 태웠습니다. 뜰에서 성막의 현관 커튼을 열고 들어가면 깊숙이 지성소를 나타내는 커튼이 있습니다. 그 커튼 방향으로 오른쪽에는 불을 켜는 등대, 즉 메노라가 있고 왼쪽에는 할라빵 열 두 개를 올려 놓는 밥상이 있었습니다. 제사장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지성소에는 사과 궤짝 만한 크기의 법궤가 놓여 있었습니다.

법궤는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왜 하필 아카시아 나무였을까그 아카시아 나무가 이스라엘 백성이 살았던 광야에 많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 왕은 수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레바논 산 꼭대기에 있는 백향목을 베어 날라다가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테루마 명령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우상숭배자인 시돈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그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솔로몬의 영광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튼벱궤가 비록 흔하디 흔한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벱궤 안팎으로 순금으로 만든 금박을 입혔다는 게 그걸 증명합니다. 법궤의 재료는 얼마든지 공짜로 구할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아카시아 나무였지만, 그것을 벱궤로 만들기 위해서는 금박을 입히는 정성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금박을 만드는 순금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져 온 테루마의 일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만든 법궤 속에 십계명 판을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벱궤는 결국 십계명 판의 케이스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단순한 십계명 케이스는 아니었습니다. 속죄소의 토대가 되는 케이스였습니다.  십계명과 속죄소는 서로 이어져서 생명의 문제를 해결하는 복음이 되었습니다. 이게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법궤의 뚜껑이 되는 속죄소에 대해서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궤뚜껑 속죄소 - 하나님 임재의 장소

이것이 법궤의 뚜껑입니다. 좌우에 천사 조각이 하나씩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두 천사의 날개는 이어져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천사의 날개 아래에서부터 십계명을 넣은 법궤 뚜껑 위까지에 작은 공간 하나가 생깁니다. 이 공간을 우리 말 성경은 속죄소라고 부릅니다. 속죄소는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곳에 임재하셔서 우리의 죄를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삶과 죽음이 결정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비누 쉐바샤마임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란 뜻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모세 때 호렙 산 또는 시내 산 위에 임재하셨습니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막에 임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동네로 내려 오신 겁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 오셔서, 그리고 호렙산에서 내려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니 그들이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가 성막에서는 속죄소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사과궤짝 만한 법궤 위, 두 천사의 날개 아래매우 작은 공간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였습니다. 이 조그만 공간우리 가운데는 아마도 조수아 아기 정도가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겁니다. 하늘 전체가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시편 기자는 찬송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호렙산 전체를 덮는 구름과 천둥과 번개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그랬던 하나님의 임재는 성막의 속죄소라는 아주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얼마나 작은가조수아 아기가 누울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 작은 속죄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베들레헴에 가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에 가면 예수탄생교회가 있습니다. 엄청나게 큰 건물입니다. 그 건물에는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조그만 문이 있습니다. 일명 겸손의 문입니다. 겸손의 문으로 들어가면 지하실로 갈 수 있는데, 그 지하실이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던 마구간이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 지하실 바닥에는 구리로 만든 별이 하나 박혀 있는데, 아기 예수가 누웠던 말 구유 자리라고 합니다. 말 구유 자리는 작아서 꼭 속죄소만 했습니다.

성막의 지성소 안에 있는 속죄소는 크기가 매우 작았습니다. 아기 예수가 누웠던 말구유만 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그 앞에서 서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해야 했습니다. 일년에 오직 한번, 욤 키푸르, 즉 속죄일에 그렇게 했습니다. 대제사장이 속죄소 앞에 서서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고하면, 하나님께서는 대개 그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값으로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의 목숨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대제사장은 깃단에 방울이 달린 예복을 입고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가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방울 소리가 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성소에 있던 제사장들은 그 방울 소리를 듣고 대제사장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대제사장이 급서한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급서한 경우, 그 시체는 속죄소 앞에 있기 마련입니다. 성소에 있던 제사장들은 갈고리 막대를 지성소 휘장 안으로 들여 보내 속죄소 앞에 있는 대제사장의 시체를 끌어 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죽었다고 공표합니다. 그러면 모든 백성은 베옷을 입고 꿇어 엎드려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신 죽은 대제사장을 애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 속죄소가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과 그 분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셨던 영광의 모습이며, 또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설명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더 속죄소가 법궤의 뚜껑이란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두 천사의 조각은 법궤를 열 수 있는 손잡이가 되는 셈입니다. 벱궤 안에는 후에 십계명판과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넣어 두었다고 합니다. 아무튼속죄소는 십계명 판 위에 놓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위에서 이루어 진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다가 형제에게 잘못한 것이 생각나면 먼저 형제에게 가서 사과를 한 후에 다시 와서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십계명 판 위에 하나님이 임재 하신다는 사실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죽음과 부활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심판과 영원한 생명

히브리서 기자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죽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죽음 후에 심판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창세기는 우리에게 아담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그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을 거라고 하면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암시를 줍니다.

죽음을 이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속죄소의 의미는 생명처럼 소중하고 강렬합니다. 속죄소는 십계명을 담은 벱궤 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법궤는 지성소 안에 놓여 있으며, 지성소는 성막 안에서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런 구조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하나하나 이해해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비밀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담을 케이스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 흔한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지만 순금으로 금박을 입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을 우리의 일상 속에서 정성껏 지켜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또한 우리의 테루마가 됩니다.

우리가 만든 케이스 위에 속죄소가 마련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곳에 임재하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그 분은 부활하신 하나님이시며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설 때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대제사장이 됩니다. 그래서 또 다른 생명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수영을 못하는 우리가 어떻게 바다를 건너 일본이나 중국으로 갈 수 있겠습니까? 비행기를 타면 되겠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한번 정하신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왜 없겠습니까? 예수님의 재림을 보면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문제에 있어 예수님을 대면해야 합니다. 그래서 속죄소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생명의 문제를 죄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의 문제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제가 아는 한 목사님은 아들이 자폐아였습니다. 그 자폐아를 치료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심리학을 공부해서 그 아이를 치료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스무 살이 좀 넘어 힘이 생긴 아들은 아버지가 귀찮게 한다는 이유로 칼을 들어 아버지를 살해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그 아들은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른이 넘은 나이인데 평생 정신병원에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노무현 정부 때는 10만 명 중 25명이 자살을 했는데, 이명박 정부 때는 36명이 자살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의 문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인데 이걸 어째서 심리의 문제로만 다루고 상담과 약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지

삶과 죽음의 문제는 속죄소 앞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속죄소는 십계명 위에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복음은 반드시 율법 위에 세워진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십계명 위에 세워진 속죄소가 우리에게 생명의 희망을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십시오. 약이나 심리학이나 재산에 의지하며 살아가지 마십시오. 그러면 삶과 죽음의 문제를 심리의 문제로 오판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해결책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울 때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추울 때는 불기둥으로 인도 하십니다. 저녁에는 메추라기로 단백질을 섭취하게 하시고 아침에는 만나로 탄수화물을 섭취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믿으십시오. 그래서 의식주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의 보물을 테루마로 바쳐 하나님을 기쁘게 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 십계명을 기반으로 하는 속죄소를 만드십시오. 그리고 거기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게 하십시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성막의 원형이 되는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은 나날이 활기차고 경이롭게 변해갈 것입니다


 

지난 주 이야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리고 이웃과 평화를 이루어 가도록 율법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손해를 끼치면 어떻게 배상하는가, 어떤 경우에 노예가 되어야 하는가 등을 배웠습니다. 시반 월 4일부터 6일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5일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 얼떨떨 한 분들은 지난 주 파라샤트를 다시 한번 더 점검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곳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마탄 토라, 즉 토라를 주시는 일이 끝나면 성막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공동체 안에 하나님께서 머무시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떠돌아 다녀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곳도 움직이기 쉽도록 텐트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이 텐트를 ‘미쉬칸’이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착을 하면 영원한 하나님의 거처 베이트 하미크다쉬 즉 성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모세는 하르 (산) 시나이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시나이 광야에는 사람들이 죄를 짓고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끊게 할 요소들이 정말로 많았습니다. 잘못하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는커녕 지옥에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방지할 필요를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 백성을 상대하시려 했습니다. 이것이 미쉬칸이 생기게 된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광야를 여행하는 동안에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는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미쉬칸에서 회개의 제사가 있는 이상...

누가 미쉬칸을 지어야 하나?

미쉬칸은 모든 민족을 위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미쉬칸을 만드는 데에 기여를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미쉬칸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재료가 필요했습니다. 금이나 은이나 동도 필요했고 ‘쇼함’ 같은 보석들도 필요했습니다. 포목도 필요했고 비단도 필요했습니다. 염소의 털이나 해달 가죽도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슅팀 나무와 올리브기름과 향료도 필요했지요. 그럼 어디서 이런 물건들을 구할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한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막 노예 신세에서 벗어나서 광야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집트를 떠날 때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열 가지 재앙을 겪은 뒤 이스라엘 백성에게 뇌물을 주고 가급적 빨리 떠나 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파라오의 기병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뒤쫓다가 얌숲(홍해)에서 수장(水葬) 된 것을 알고 있지요? 이집트 기병대는 온갖 보석으로 자신들의 갑옷에 그리고 마차에 치장을 했습니다. 수장되었던 마차의 장식품들이 해류에 밀려 떠올라와 이스라엘 백성이 머물고 있는 해변으로 밀려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들을 건져낸 것만으로도 큰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미쉬칸을 짓기 위해서 재료들을 기증하라고 했습니다.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해변에서 주운 보석들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미쉬칸의 설계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미쉬칸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알려 주셨습니다. 미쉬칸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집니다. 첫째, 카짜이르 (바깥 뜰), 둘째, 코데쉬 (성소), 셋째, 코데쉬 하 코도쉼 (지성소). 카짜이르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일반 백성들이 가지고 온 제물을 받는 곳입니다. 여기에는 큰 ‘미쯔바야크’가 있는데 짐승의 희생이 드려지는 곳으로 제단이라고 합니다. ‘키요르’도 있었는데 물두멍으로 제사장들이 손을 씻는 기구입니다. 코데쉬 입구 오른쪽에 위치합니다. 카짜이르 안에 있는 텐트는 ‘타카쉬’의 가죽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 텐트는 코데쉬와 코데쉬 하 코도쉼이라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집니다. 첫 번째인 코데쉬에는 슐한 즉 떡상과, 메노라 즉 등대와, 미쯔바야크 하 짜하브 즉 금 제단과, 미쯔바야크 하 케토레트 즉 향단이 있습니다. 미쯔바야크 하 케토레트를 미쯔바야크 하 프니미라고도 합니다. 안쪽 제단이란 의미입니다. 미쉬칸에서 가장 거룩한 장소는 안쪽에 있는 코데쉬 하 코도쉼입니다. 여기에는 두 개의 루코트 즉 십계명 판이 들어 있는 아론 즉 궤가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장소는 매우 거룩하기 때문에 오직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도 일 년에 꼭 한번 욤 키푸르 즉 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코데쉬 하 코도쉼은 파로체트라고 하는 두꺼운 커튼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아론-법궤 

모세는 법궤를 만들기 전에 하나님께서 법궤의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법궤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모두 붙어 있습니다. 바깥쪽과 안쪽은 모두 순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가운데 부분은 슅팀 나무로 되어 있습니다. 바깥쪽의 가장자리는 왕관 모양입니다. 옮기기 쉽도록 바깥쪽에는 두 쌍의 고리가 달려 있고 거기에 금으로 만든 막대를 끼워 레워인들이 법궤를 옮기도록 고안되었습니다. 법궤 뚜껑에는 순금으로 만든 케루빔 즉 천사의 상 두 개가 서로 마주 보도록 해서 설치됩니다. 이 케루빔의 얼굴은 어린 아이의 얼굴입니다. 법궤에는 아세레트 하 디브로트 즉 십계명이 새겨진 판이 들어갑니다. 법궤는 미쉬칸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그 위에 하나님의 쉐키나가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현존이 발산됩니다.

슐한-떡상 

테이블 위에 두 개의 길죽한 상자가 있는데 각 상자 안에는 여섯 개의 칸이 있습니다. 이 칸에 빵을 넣어 둡니다. 이것을 슐한이라 합니다. 이 슐한의 모습도 이미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슐한은 나무를 금으로 싸서 만듭니다. 그리고 슐한을 움직일 때는 금고리 두 쌍을 테이블에 붙여서 여기에 금으로 싼 나무로 막대를 끼워 레위인들이 듭니다. 여기에 넣는 빵을 레켐 하 파님 즉 진설병이라고 합니다. 이 빵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파라샤트 바이크라 파라샤트 에모르를 참고 하십시오. 빵은 넓은 U자 형입니다.  레켐 하 파님은 안식일마다 제사장들이 미쉬칸에서 먹습니다. 이 빵들은 일주일이나 된 것이었지만 항상 오븐에서 갓 나온 빵처럼 신선하고 따끈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토라를 지키는 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신다는 것입니다. 슐한 위에는 레보나라고 하는 향료가 든 카포 즉 접시가 두 개 놓여 있었습니다.

메노라-등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메노라의 환상도 보여 주셨습니다. 이 메노라는 중심대가 있고 중심대에서 가지 셋이 좌우로 뻗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지는 모두 일곱 개가 됩니다. 일곱 가지들은 각각 같은 모양의 장식이 붙습니다. 가비아 (컵): 둥근 모양입니다. 모두 22개입니다. 카프토르: 이것은 공 모양입니다. 모두 11개가 붙습니다. 페라흐: 꽃이라고 합니다. 페탈이라고도 합니다. 모두 9개입니다. 메노라는 하나의 금판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가지 꼭대기에는 기름을 담는 컵이 있습니다. 그리고 컵 안에는 심지를 놓은데 그 심지는 중앙의 컵을 향해 놓여져야 합니다.

구리 제단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미쉬칸의 카트짜이르에 미쯔바야크를 만들어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미쯔바야크는 슅팀 나무로 만들어 구리로 덮어야 합니다. 미쯔바야크는 우묵해서 거기에 흙을 넣습니다. 이것을 미쯔바야크 하 네코쉐트 즉 구리제단 또는 미쯔바야크 하 키트쫀 즉 바깥 제단이라고 부릅니다. 구리 제단의 꼭대기 네 모서리에는 뿔을 답니다. 미쯔바야크 중앙에는 카르코브라고 하는 구리 빔을 답니다. 여기에는 꽃봉오리나 꽃을 새겨 넣습니다. 카르코브 밑은 미크바인데 레쉐트 즉 구리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미쯔바야크를 위와 아래로 나눕니다. 제사장이 코르바노트 즉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릴 때 어떤 것은 윗부분으로 가게하고 어떤 것은 아래 부분으로 가게 해야 합니다. 구리 제단도 옮기기 쉽도록 고리를 만들어 붙입니다. 그리고 금으로 감싼 나무 봉을 그곳에 넣고 레위인들이 나릅니다. 이 미쯔바야크에서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이 미쯔바야크는 카트짜이르 즉 공개된 장소에 있었지만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그곳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은 항상 있었지만 구리나 그 안의 나무는 녹거나 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미쯔바야크에서 피어나는 연기는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마치 기둥처럼 똑바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미쉬칸 

미쉬칸의 기둥들은 모두 6미터쯤 되는 슅팀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직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아도님이라고 하는 두 개의 소케트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았습니다. 각각의 빔은 금을 입힌 봉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미쉬칸은 3가지의 가죽들로 덮혔습니다. 바깥쪽은 숫양의 가죽, 그리고 타카쉬의 가죽이었습니다. 타카쉬가 무엇인가요?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물개 종류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니콘이라고도 합니다. 아무튼 타카쉬의 가죽은 지붕에 꼭 맞게 씌워 졌습니다. 아래로 한 치도 내려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쉬칸을 감싼 가운데 천은 염소의 털이었습니다. 이것은 오헬 모에드 즉 만남의 텐트 입구에 쳐지기도 했습니다. 마치 신부의 베일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오헬 모에드 안쪽으로부터 아름다운 휘장들이 쳐졌습니다. 휘장은 여러 가지 색깔이 사용되었습니다. 열 가지 또는 다섯 가지 천이 하나의 그룹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독수리 모습이나 사자의 모습도 그려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휘장들은 금으로 만든 고리로 연결되었습니다.   

질문과 대답

 

1)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릴 예물은 무엇입니까? 노예로 살던 그들이 값진 물건들을 어떻게 구했습니까?

2) 창조자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땅 위에 성소를 세우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3) 증거궤와 속죄소의 크기는 얼마나 됩니까?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참고) 규빗은 로마의 단어입니다. 히브리어는 '암마'란 단위를 쓰는데 30센티미터쯤 됩니다.

4) 조각목과 정금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5) 진설병과 진설상에 대해 알아 봅시다.

6) 등대 즉 메노라에 대해 알아 봅시다. 살구나무 즉 슈카딤을 새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7) 성막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알아 봅시다.

8) 번제단이 무엇이며 성막의 뜰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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