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22

Ex. 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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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4일

"이것이 자원하여 드린 예물이니라"

 

출애굽기 35장 20-35절: [20]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 앞에서 물러갔더니 [21]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니 [22]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팔찌와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다가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23] 무릇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이 있는 자도 가져왔으며 [24] 은과 놋으로 예물을 삼는 모든 자가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며 섬기는 일에 소용되는 조각목이 있는 모든 자는 가져왔으며 [25]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빼고 그 뺀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을 가져왔으며 [26]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뽑았으며 [27] 모든 족장은 호마노와 및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왔으며 [28] 등불과 관유와 분향할 향에 소용되는 기름과 향품을 가져왔으니 [29] 마음에 자원하는 남녀는 누구나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빌어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드렸으니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린 예물이니라 [30]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31]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32] 금과 은과 놋으로 제작하는 기술을 고안하게 하시며 [33]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기는 여러 가지 정교한 일을 하게 하셨고 [34] 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35]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세공하는 일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로 수 놓는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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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7년 3월 26일

"안식으로 시작하다"

출애굽기 35장 1-9절: [35.1]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사 행하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2] 엿새 동안은 일하고 일곱째 날은 너희를 위한 거룩한 날이니 여호와께 엄숙한 안식일이라 누구든지 이 날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 [3]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 [4]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이 이러하니라 이르시기를 [5]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택하되 마음에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금과 은과 놋과 [6]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7]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8] 등유와 및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드는 향품과 [9]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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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출애굽기 35장은 갑자기 제 4계명인 안식일 계명으로 시작합니다. 토라 두루마리는 본래 장 절 구분이 없었기 때문에 35장은 34장에 이어 진 것으로 봐야 합니다. 따라서 35장은 모세가 마지막으로 시내산 꼭대기에 내려 온 시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34장에 따르면 그의 손에는 하나님께서 새겨주신 십계명 판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대면을 해서인지 모세의 얼굴은 광채가 나서 사람들이 가까이 하지 못하자 모세 는 스스로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고 합니다. 이어서 35장에 들어가자마자 제4계명이 나왔던 것입니다. 왜일까요? 물론 안식일 명령을 독립적으로 다룰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토라 두루마리가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다루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은 게 아닐까요?

필자는 안식일 계명이 유독스럽게 여기에 기록된 것은 이것이 모세의 하산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모세가 십계명 판을 들고 시내산 꼭대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내려 온 것이 안식일과 상관이 있을 거라는 추정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오늘날 유대인들도 모세가 십계명 판을 들고 내려왔을 때가 티슈리 월 10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따져 보면 오순절부터 티슈리 월 10일까지 대략 120일이 됩니다. 모세가 40일씩 세 번 시내산 꼭대기에 잠도 자지 않고 식사도 하지 않은 채 거했다고 생각하면 그때는 모세의 마지막으로 시내산 거함을 끝내는 시점이었지요. 80세 된 노인 모세가 세 번이나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가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다니… 물론 평범한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러나 당시 모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티슈리 월 10일에 들고 내려온 십계명판은 사실 두 번째 십계명 판이었습니다. 첫 번째 십계명판은 모세가 처음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에머랄드 판을 다듬으셔서 거기에 손수 십계명을 기록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십계명 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하산 중에 이스라엘 백성의 금송아지 우상숭배를 목격하고 던져서 깨뜨려 버렸기 때문입니다. 너희같은 작자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은 돼지 발에 진주와 같다…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했겠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똑 같은 크기로 돌판 두 개를 다듬어서 다시 시내산 꼭대기로 올라오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티슈리 월 10일에 모세가 들고 내려온 십계명 판은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새겨 주신 것으로 보는 겁니다.

그런데 티슈리 월 10일이 무슨 날입니까? 초막절 닷새 전이기도 한 이 날은 욤 키푸르, 즉 속죄일입니다. 그리고 속죄일은 안식일 중의 안식일입니다. 매우 강한 안식일이지요. 안식일에는 그래도 끼니를 거르지는 않지만 욤 키푸르, 즉 속죄일은 안식일 중의 안식일이라 하루 종일 금식합니다. 속죄일은 안식일 율법이 가장 엄하게 적용되는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출애굽기 35 1-3절의 안식일 계명은 욤 키푸르, 즉 속죄일의 계명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구태여 제4 계명을 강조하실 이유가 속죄일이란 이유 밖에는 없는 것이지요.

속죄일이 지난 후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막과 성구를 만들 재료를 가져오게 했고 재료가 모이자 재능있는 사람들에게 성막과 성구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막과 성구가 만들어 지기 시작한 때가 바로 초막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의 성경을 읽어 보면 성막과 성구는 석달 동안 만들어 졌습니다. 그리고 넉 달째 부터 이에 대한 실험운용이 있었고 결국 초막절로부터 6개월 후인 출애굽 제2년 첫날에 봉헌식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출애굽기 35장 처음에 갑자기 등장한 안식일 명령은 속죄일과 초막절을 생각하면서 그 의미를 깊이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 됩니다. 성막과 성구는 안식에서 시작이 되었던 것이고 그 안식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으로 설명할 수 있지요. 안식은 속죄와 더불어 진행이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들고 내려온 십계명판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금송아지 우상숭배 때 모조리 죽었어야 했을 자신들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다는 감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판을 다시 새겨주신 게 그 용서의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사실 십계명판은 케투바였거든요. 모세를 중매장이로 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혼인증명서… 그 혼인증명서가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로, 다시 말해서 간음 행위로,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혼인증명서를 재발급하시고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신 겁니다. 그리고 그 날을 안식일로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식일은 안식일 중의 안식일이라 할 수 있는 속죄일이었습니다. 히브리어로 욤 키푸르라고 하지요. 이 날은 처소에 불도 피우지 말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날에 일하는 자가 있다면 죽여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엄하게 안식일 율법을 만드셨을까요? 속죄의 의미가 그만큼 지엄하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을 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모세도 숨을 고르고 이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했겠지요. 안식을 취하면서 말입니다. 안식 후에 모세는 시내산 꼭대기에서 본 성막을 그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시내산 꼭대기 위의 푸른 하늘에 마치 레이저 쇼처럼 나타났던 그 성막… 그리고 그 안에 진열되어 있던 성구들의 모습… 그걸 그려 보면서 필요한 물건을 생각하고 또 설계도를 그리고… 그렇게 몇 일을 보냈을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모세와 함께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겁니다. 우리를 노예 상태에서 해방 시키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주인 노릇을 하게 해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았던가… 금송아지 우상숭배만 했던가? 덥다고, 또는 춥다고, 배고프다고, 또는 다른 게 먹고 싶다고… 얼마나 많은 불평을 했던가… 노예로 살았을 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경험하고 즐거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얼마나 뻣뻣하고 교만했던가… 그래서 모세가 성막과 성구를 만들테니 재료를 가져 오라고 했을 때 그들은 적극적으로 응답을 했습니다. 필요한 모든 재료들을 넘치도록 충분히 가져 왔습니다. 모든 일을 감당하고도 남을 만큼 그들은 가져 왔습니다. 그것은 감사의 표현일 수도 있었습니다. 자유인으로, 그리고 속함을 받은 신앙인으로 그들은 새로운 역사를 열었습니다.

설교문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의 본문에 안식일 관련 말씀이 나옵니다. 안식일 관련 말씀이 나올 장소가 아닌 것 같은데 나오기 때문에 생뚱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내용도 제4계명과 비교해 보면 좀 다릅니다. 출애굽기 35 2절과 3절을 보면, “누구든지 이 날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죽이라, 그리고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라… 이런 말은 사실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에는 들어가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앞뒤의 구절을 읽어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문맥에서 이 말씀이 어떤 용도로 쓰이고 있는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본래 성경은 장 절 구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라고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두루마리 하나로 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장 절이 들어간 것은 16세기에 인쇄술이 발명되어 성경을 인쇄하게 되었을 때 출판업자가 임의로 붙인 것입니다. 책을 만들 때는 이게 반드시 필요하거든요.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일을 때는 장 절을 무시하고 읽는 버릇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의미가 끊기지 않고 이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5장 초반부에 안식일 말씀이 나오는 것은 34장의 마지막 부분과 연결이 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안식일 말씀은 35 4절 이하의 말씀과도 연결이 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별 문제 없이 35 1-3절에 기록된 안식일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갑자기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에 대한 말씀을 주신 것은 34장 마지막 부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34장 마지막 부분을 읽어 보면, 모세는 십계명 판을 들고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때 그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고 하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눈이 부셔서 모세를 바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수건을 가져다가 자기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때 모세가 가지고 내려왔던 십계명판은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새겨주신 것이었습니다. 첫번째 판은 모세가 깨뜨려 버렸지요. 첫번째 판을 들고 내려올 때 이스라엘 백성은 금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놓고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들을 향해 십계명 판을 던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첫번째 십계명 판은 깨져 버렸습니다. 이것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도 깨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두 개의 돌판을 잘 다듬어서 시내산 꼭대기로 올라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돌판에 십계명을 다시 새겨주셨습니다. 모세는 두번째 십계명 판을 들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은 다시 효력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세가 두번째 십계명 판을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티슈리 월 10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날을 안식일로 지키라 하셨던 겁니다. 특별한 안식일로 지키라고 하신 거지요. 그래서 이 날 일하는 자는 죽이고, 집에 불도 피우지 말라고 하셨던 겁니다. 십계명의 네번째 계명에는 나오지도 않는 벌칙을 추가하신 겁니다. 바로 이 특별한 안식일을 우리는 속죄일이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어로 욤 키푸르라고 하지요.

욤 키푸르, 즉 속죄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금송아지 우상숭배의 죄를 용서해 주신 날입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새롭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을 짓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이 체계적으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용서해 주시면서 안식일을 가지라 하셨습니다. 안식하면서 그 우상숭배의 죄를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도록 다짐하라는 의미지요. 그러므로 그 날 일하는 자는 죽여야 한다고 하신 겁니다. 그런 자는 하나님의 언약을 업신 여기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날만은 집안에 불도 피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속죄일에는 하루 종일 금식을 하라는 의미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속죄일은 일년 중 가장 특별한 안식일이 되었습니다.

일본을 와의 나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와식, 와규… 이런 말을 씁니다. 와식은 일본 음식이란 뜻이고 와규는 일본 ‘소’란 뜻입니다. 와는 평화란 단어에서 화를 말하는 것인데 일본식 발음으로는 ‘와’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와를 왜라고 하지요. 왜소할 왜… 그래서 왜식, 왜놈, 왜구라고 합니다. 부정적 의미의 말이지요.

그런데 와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는 대개 평화의 화를 모든 사람이 함께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와는 우리의 화와 아주 다릅니다. 와를 설명 할 때, 꼭 필요한 속담이 있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바로 이 속담입니다. 그룹 안에서 튀지 말라는 뜻입니다. 만약 그룹 안에서 튀는 행동을 하면 왕따를 당하게 됩니다. 이걸 이지메라고 하지요. 와를 어기면 이지메를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일본의 존재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와는 기본적으로 종적인 관계에서 생겨나는 평화를 말합니다. 오야붕의 명령에 꼬붕이 순종하는 것이 일본식 와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오야붕 중의 오야붕은 바로 천황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천황에게 순종하는 것이 궁극적인 와를 이루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지배층은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냈습니다. 바로 신또이즘 입니다. 천황을 신으로 섬기는 종교지요. 신또이즘은 일본 전국에 8만 개의 신사, 즉 진자를 거느리고 일본인들의 혼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민중봉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본 역사상 민중봉기가 딱 한번 있었습니다. 1637 12 17일 부터 그 다음 해 4 15일 까지 대략 넉달 동안 시마바라 성을 중심으로 한 민중봉기였습니다. 이것을 ‘시마바라의 난’이라고 합니다. 영화 침묵의 배경이 되는 사건이지요. 지난 주에 저는 일본 규슈에 있는 시마바라에 다녀왔습니다. 규슈의 내해인 아리아케 만에 있는 작은 도시였습니다.

시마바라의 난은 일본에서 있었던 처음이자 마지막인 민중봉기로 수 많은 농민들이 희생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와 때문에 희생된 사람들이지요. 그 숫자가 2 6천 명이라고도 하고 3 7천 명이라고도 합니다. 일정하지 않은 것을 보니 결국 몇 명이 죽었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제 생각에는 10만 명 이상이 죽어나간 것 같습니다. 시마바라의 난은 기독교와 조선인을 생각하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는 사건입니다.

임진왜란의 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시마바라-아마쿠사의 영주였습니다.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지요. 그는 임진왜란 때 많은 조선인 포로들을 자기 영지로 데리고 와서 살게 했습니다. 이때는 일본에서 기독교 전파가 한창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인 포로들은 기독교를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포로생활을 하던 이들이 기독교 신자가 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에도 막부는 이걸 위험하게 생각했습니다. 일본에 기독교를 믿는 조선인들이 생긴 것은 모난 돌이 생긴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모난 돌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정으로 쪼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에도 막부는 고니시 유키나가를 축출하고 시마바라의 기독교인 영주를 쫓아내버렸습니다. 그리고 막부에 충성하는 자들을 시마바라와 아마쿠사의 영주로 삼았습니다. 새로 온 영주들은 안보를 위해 성을 쌓는다고 하면서 민중들에게 엄청난 세금과 노역을 요구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인들을 잡아다가 고문을 하고 배교를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민중봉기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에도 막부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시마바라의 난은 4개월 만에 진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천황이 계신데 어찌 하나님이란 신을 섬길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이란 신을 섬긴다면 그는 일본인이 아니다… 시마바라의 난이 실패로 끝나면서 일본의 기독교는 위축이 되고 말았습니다지금까지 그런 위축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속죄일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새로운 안식일에 만약 일을 한다면 사형에 처라하고 하셨고 아울러 집안에 불을 피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일을 한다고 처형시키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에 일을 안한다고 처형하는 수는 있어도 일을 한다고 처형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일반적인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속죄일같은 새로운 안식일에는 더욱 더 일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앉아서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집안에 불을 피우지 말고, 그러니까 밥도 먹지 말고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속죄일이라는 새로운 안식일을 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뜻을 일본의 와로는 결코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 이것이 신또이즘에 취한 일본인들의 비극이 되겠습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업신 여기고 아래로는 민중을 업신 여기는 것이 신또이즘이고 또한 천황제도입니다. 이것이 또한 일본 교회의 가장 큰 고민입니다. 이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런 점에서 요한복음 17장은 아주 중요한 복음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보통 안식일과 욤 키푸르, 즉 속죄일은 어떻게 다른지 알아 봅시다.

2) 왜 안식일 명령이 성막과 성구 제작 직전에 떨어졌습니까?

3) 모세가 하나님이 두 번째로 새겨주신 십계명판을 들고 내려온 때를 속죄일이라 생각하는 유대인들의 지혜에 대해 평가해 봅시다.

4) 속죄일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과 성구를 만들 재료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엄청난 양을 자발적으로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어떤 감동이 있었던 것일까요?

 


2016년 3월 6일

"우리와 함께 행하옵소서"

출애굽기 36장 2-7절: [2] 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부터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3]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온 예물을 모세에게서 받으니라 그러나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왔으므로 [4] 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을 중지하고 와서 [5]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6] 모세가 명령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이르되 남녀를 막론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그치니 [7]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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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시내산 꼭대기서 볼 것을 다 본 후에 산 기슭에서 대기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들을 하나하나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한것은 성막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성막은 텐트라 할수있으나 그 규모가 범상치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것도 텐트처럼 분리해서 인력으로 이동시킬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자면 이에 걸맞는 설계를 하고 적절한 재료를 구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막 속에는 이런저런 기물들이 필요했습니다. 성막뿐 아니라 기물에도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모양이 있었으며 또한 규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었습니다. 모세의 기억력은 대단했던것 같습니다. 그는 시내산 꼭대기에 머물면서 하나님께서 마치 레이저 쇼처럼 보여주신 모든 것들을 그대로 기억하고 재현해냈습니다. 그리고 그 재현에는 특별히 두 사람의 공이 컸는데, 그 두 사람은 유다지파에 속한 건축가 브살렐과 단지파에 속한 공예가 오홀리압을 말합니다. 이 두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모세는 몇 달 안에 성막과 그 안에 둘 기물들을 완성할수 있었습니다. 성막은 모세가 티슈리 월 10일에 시내산에서 내려온 직후에 시작하여 석달 동안 지어졌고 이후 석달 동안 시험 운용한 후 출애굽 원년 아달 월 29일에 완공하고 그 다음 날인 출애굽 2년 니싼 월 1일에 봉헌한것으로 봅니다.

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 그리고 마음이 지혜로운 자원자들을 모아 본격적으로 성막을 만든다는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은 더 많은 예물을 들고 모세를 찾아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예물을 가지고 왔는지 성막을 만드는 일에 지장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일꾼들이 모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남음이 있다... 무슨 일을 하는데 재료가 남으면 좋은거지요. 그러나 그게 백성이 바친 헌물이라는게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 바친 헌물을 남기면 함부로 쓸수 있지요. 그건 하나님 앞에 죄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성막에서 일하는 일꾼들로 하여금 시험에 빠지게 할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모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명령이었습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예물을 가져오지 말라는 말이지요. ? 이미 백성이 가져온 예물의 양이 모든 일의 재료가 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막은 이동해야 하는것이라 튼튼하고 강하게 그리고 가볍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재료도 좋아야 하지만 적절한 설계가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성막에서 참 많은것을 배울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성막이 팀웍의 결과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은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모세는 그 말씀을 그대로 기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했습니다. 그리고 재능있는 사람들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예물을 가지고 와서 성막을 만드는 재료로 삼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작업은 결국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긴밀한 교제를 위한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범적인 교회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교회는 헬라어 ‘퀴리우’에서 나온 말입니다. 퀴리우란 퀴리오스의 소유격으로 ‘주님의 것’이란 뜻입니다. 독일어 Kirche를 보면 헬라어 퀴리우의 흔적이 남아있다는걸 알수 있습니다. 이걸 중세영어에서 Church라고 했습니다. Ch발음은 ㅋ 발음이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퀴리우는 기독교가 유대교와 분리될때 그러니까 약 5세기경에 유대인의 회당 앞에 기독교인의 예배장소를 만들고 이걸 일컬었던 말입니다. 시나고그에 대항한 말이 퀴리우였던 겁니다. 그러므로 퀴리우 또는 키르헤 또는 처치 또는 교회란 말에 건물적 요소가 들어있는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건물은 편의적 장소일뿐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만들라고 하셨던 성막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을뿐입니다. 성막에서 많은 의미를 찾을수 있기는 하지만 그 의미는 상징일뿐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좀더잘 이해하고 그리하여 합리적이고 완벽한 예배를 드리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키르헤나 처치나 교회는 헬라어 성경의 ‘엑클레시아’와 그것의 원어인 히브리 성경의 ‘카할’을 번역한것으로 봐야합니다. 카할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즉 이집트에서 불러낸 하나님의 백성을 말합니다. 엑클레시아는 그걸 그대로 직역한 말이지요. 카할은 거룩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셨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카할에게 화를 낸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초대교회를 매우 어렵게 했던 사람이 마르시온입니다. 영지주의자지요. 이 사람은 예수님의 복음이 중요하지 예수님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는 아예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남도 없고 따라서 삶과 죽음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럴수는 없다는겁니다. 그래서 오로지 말씀만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 말씀, 즉 ‘로고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고단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지요. 예수님은 유령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비록 짧은 생애이긴 하지만 이 땅에서 구체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마르시온에 따르면 이 세상은 악하기 때문에 우리는 악한 세상을 버리고 오로지 선하신 하나님 나라만 바라보고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결국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세우신 공동체를 무시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고 있는 자유주의 신학은 마르시온의 영지주의와 매우 비슷합니다. 자유주의자들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개인주의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상가로 소개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한 교회의 메시지도 여러 사상들 가운데 하나로서 옵션처럼 소개됩니다. 그래서 교회의 필연성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교회는 예수의 선포에 근거하지 않고 초대교회의 산물로 치부됩니다.

교회는 구원을 이루는데에 필요하지 않은것을 넘어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것이 됩니다. 이런 생각은 결국 하나님은 믿지만 교회의 권위는 받아들이지 않는 근대 계몽주의를 따르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일단 성경 자체가 개인주의를 배제합니다. 성경 어디에 공동체를 떠난 개인을 찬양하고 있습니까? 없습니다. 신약성경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항상 하나님의 백성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선포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면서 그 나라의 빛을 발할 하나님의 백성을 모아 들이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공동체를 만들려고 했던것입니다. 그 공동체는 예수님을 머리로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이 분리될수 없듯이 하나님 나라와 교회도 분리될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론은 신학의 여러 주제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신학 전체의 방향과 성격을 결정짓는 지평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는 교회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개인에게 직접 도래하기보다 교회를 통해 개인에게 다가갑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를 구원의 기관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가 없는 교회 사상도 문제지만 교회가 없는 또는 무시하는 하나님 나라 사상도 문제가 됩니다. 물론, 교회와 하나님 나라가 일치하는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초월성은 세속에서 결코 해소될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가 제 아무리 밀접하다 해도 그 차이는 분명히 인식되어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모세는 성막을 만들기 위해 어떤 팀웍을 구축했습니까?

2) 성막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어떤 용도였습니까?

3) 교회 공동체의 필연성 또는 필수성에 대해 논해 봅시다.

 


2012년 3월 18일

출애굽기 35장 30절 - 36장 7절: [30]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31]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32] 금과 은과 놋으로 제작하는 기술을 고안하게 하시며 [33]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기는 여러 가지 정교한 일을 하게 하셨고 [34] 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35]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세공하는 일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로 수 놓는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셨느니라 [36.1]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신 자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 [2] 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부터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3]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온 예물을 모세에게서 받으니라 그러나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왔으므로 [4] 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을 중지하고 와서 [5]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6] 모세가 명령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이르되 남녀를 막론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그치니 [7]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

References 마태복음 28장 11-20절: [11]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14]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15]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일꾼들

광고 카피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광고 카피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엿새 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주일은 쉬라고 하셨습니다. 쉰다는 것은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던 것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를 쉬게 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명령을 하셨을까요?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제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대한 명령은 평생  파라오의 노예로 살아왔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에 받았던 것입니다. 자유인이 누릴 있는 것이지요.

차를 사면, 두툼한 설명서 권이 따라 옵니다. 영어로 매뉴얼이라고 하지요. 엔진 오일이나 기어 오일은 언제쯤 갈아 넣어라, 안전 장치는 어떤 있다, 자동 키는 이렇게 써라, 순정부품은 어디서 판다등등차에 관한 모든 설명이 들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설명서를 읽지 않고도 차를 사용할 있습니다. 내가 차니까 마음대로 굴릴 있지요. 그러나, 아무리 차라고 해도 자동차 제작자들이 만든 설명서대로 사용해야 고장 없이 오랫동안 차를 사용할 있습니다.

우리 몸과 정신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 정신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사용하면 탈이 수가 있습니다. 몸과 정신을 관리하면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용할 있지요. 자동차를 만든 사람들이 차동차 설명서를 만들어 주었듯이, 우리 몸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사용 설명서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게 바로 성경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우리에게는 주일이 되겠지요.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육체와 정신이 쉬는 날입니다.

성경은 쉬는 것도 일하는 것만큼 엄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엄하다는 것은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쉬지 않으면 일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쉬지 않고 어떻게 일을 계속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고 일곱째 날은 우리 몸을 위해서 쉬어야겠습니다. 일주일에 하루를 쉬면서 지난 엿새 동안 했던 일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엿새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해야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피드백을 계속하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건강한 삶을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 짧은 시간이라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창조적인 사람으로 변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다듬어 있습니다. 그래서, 생애를 마칠 , 위대한 신앙인으로 칭송을 받게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인은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십계명 판을 받아서 내려 , 그는 성막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을 짓기 위해 기꺼이 예물을 바쳤습니다. 모세는 브살렐, 오홀리압 같은 젊고 유능한 기술자들을 모아서 성막을 짓게 했습니다. 성막의 디자인은 모세가 호렙산 꼭대기에서 목격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모세가 말한 대로 설계도를 그렸고 이에 맞추어 이런저런 부속품들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성막 안에 놓을 여러 가지 기명들도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휘장에 온갖 수를 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힘만으로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많은 남녀노소가 성막 일에 달려 밖에 없었습니다. 

성막은 그리 크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땀한땀 의미를 담아야 했기 때문에, 결코 단순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남녀노소가 모두 달려 들어 감당을 해야 해결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행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가끔 선교 현장에서 사람은 필요 없다 돈만 보내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리고 돈은 다다익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말은 틀린 말입니다.

모세가 성막을 만들 , 많은 물건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물건을 내어 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가지고 왔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예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예물이란 자원해서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억지로나 대가를 바라고 드리는 것은 예물이 아닙니다. 그건 뇌물이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뇌물을 받지 않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다다익선이란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다. 필요한 것만 받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예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적절한 선에서 예물 바치기를 중지시켰습니다.

교회의 헌금에서도 이게 중요합니다. 헌금은 우러나오는 마음의 예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많이 거두면 안됩니다. 우러나오는 마음의 예물이 아니거나 필요 이상으로 예물을 많이 거두면, 반드시 탈이 납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이 일하는 아니라 돈이 일하게 됩니다. 그러면 부패하게 되는 겁니다.

요즘 많은 교회들이 금융 부채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판교 신도시만 해도 27 교회들 가운데 24 교회가 금융 부채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걸 가운데 걸어간다고 표현합니다. 치읓 받침의 빛이 아니라 지읒 받침의 빚입니다.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요? 부동산으로 돈이 헌금이란 이름으로 교회에 엄청나게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으로 돈이 헌금으로 바쳐지면 그건 부동산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부동산에 엄청난 투자를 하게 것입니다. 게다가 교회성장학이라는 사이비 학문이 많은 고기를 잡으려면 그물을 써야 한다면서 무조건 건물이 교회를 만들라고 부추겼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은행 빚을 지고 가운데 걸어가게 것입니다.

저는 헌금을 위해서 기도할 , 한가지를 기도합니다. 6 동안 열심히 일해서 돈이 우리 교회의 십일조가 되기를 바랍니다하는 기도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의 십일조는 아주 요긴하게 쓰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의 십일조가 드려지는 교회에서는 금융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이런 교회의 재정은 빠듯한 같지만 항상 모자라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을 항상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빠듯한 같지만 모자라지 않게 돈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통해서 사람을 위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꾼에 대한 생각은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구약의 본문 말씀에 따르면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첫째, 모세 같이 신령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해 줍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이런저런 일을 하게 합니다. 이른바 선지자들입니다. 둘째, 브살렐과 오홀리압 같은 젊고 창조적이고 뛰어난 기술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셋째, 여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들을 통해서 놀라운 일들을 이루셨습니다. 넷째,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긴가민가 하는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도 버리시지 않고 당신의 일꾼으로 삼아 주십니다. 결국 세상의 모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일손을 함께 하며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안식에서 출발합니다. 안식이 없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의 신비한 점이기도 합니다.

모세 같은 늙은 자켄들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눈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호렙산에 올라가서 40 가까이 내려오지 않자 몹시 불안해 졌습니다. 그래서 에이레브 라브라는 불평분자들은 이런 불안을 이용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숭배를 하게 했고 결국 이집트로 되돌아 가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세를 생각할 , 조심해야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대면하여 말씀하신 위대한 사람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세가 우리와 다른 신비한 사람일 수는 없었습니다. 역시 모자란 인생을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역시 우리처럼 희로애락 속에서 살아갔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가 우리가 달랐던 하나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40 동안의 양치기 삶입니다. 하지만 시대에40 동안 양치기로 살았던 사람이 모세뿐이겠습니까? 많았겠지요. 그러나 모세는 40 동안 양만 치고 살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모세는 40 동안 하나님에 대해서 무한히 묵상하고 생각하고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받는 고통과 해방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40 삶을 통해서 모세를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결국 모세는 80세가 되던 , 호렙산 기슭에서 떨기나무에 타지 않는 불로 임하신 하나님을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모세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그는 80 이후 40 동안 노인이었지만 민족의 지도자로서 활기찬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어로 노인을 자켄이라고 합니다. 자켄은 우리 말로 번역하면 장로가 됩니다. 장로는 노인이지만, 지혜로워서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있게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의 이치와 사리를 분별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는 인물입니다. 자켄은 신앙적으로 또한 세상적으로 지도자란 말이지요. 우리는 먹고 사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단순한 노인이 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있는 노인이 되어야 합니다. 자켄, 장로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자켄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켄으로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막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성막을 만들기에는 이미 늙었습니다. 노안이 와서 사물을 제대로 분별할 없었습니다. 게다가 노구를 이끌고 살다 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힘이 들었습니다. 그때 모세는 깨달았습니다.  노인은, 자켄은, 장로는, 육체로 일하는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지혜와 지식으로 일한다는 것을자신의 경험과 지혜와 지식을 젊은이들에게 전승시켜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일을 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젊은이들이 일을 하지만, 일을 지도하는 사람은 노인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켄은 젊은이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일을 시킬 있지요. 그래야 젊은이들의 미래를 상상하고 올바르게 준비하게 있습니다. 모세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세가 우리와 비교해 성정이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자켄으로서, 장로로서, 늙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브살렐 같은 젊은 일꾼들

모세는 브살렐 같은 젊은 일꾼들을 뽑아서 성막을 만들게 했습니다. 브살렐은 모세의 누나인 미리암의 손자였습니다. 모세에게는 외손주가 되는 사람이었지요. 브살렐을 영어로는 베짤렐, 히브리어로는 베트짤렐이라고 발음 합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National Betzalel School of Art and Design이란 학교가 있습니다. 국립 베트짤렐 예술학교란 뜻이지요. 1903년에 설립이 되었으니 벌써 110년이 학교입니다.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그림은 베트짤렐 예술학교의 표지입니다. 표지 중앙에 법궤와 속죄소가 그려져 있는 재미있지요. 학교에서는 공예 기술과 여러 가지 디자인 기술을 배운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 가운데서 누가 베트짤렐 예술학교에 가서 디자인 공부를 하고 왔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무슨 이유로 베트짤렐이란 이름을 예술학교의 이름으로 삼았을까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유대인 사회에서 베트짤렐, 브살렐의 위치를 있습니다.

브살렐은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남보다 탁월한 눈과 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손에 들어가면 모든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브살렐이 무엇을 복제나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는 공교히 연구를 해서 각종 기물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창조적인 장인이었던 것입니다. 브살렐은 모세가 미처 말해 주지 않은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도 스스로 지혜롭게 생각해서 만들어 냈습니다. 그래서 모든 딱딱 들어맞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막을 분해해서 나를 때도 파손이 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부품을 모아 합체를 때도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어느새 온전한 성막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성막을 만들 , 모세의 외손자인 브살렐만 대우를 받았던 아닙니다. 밖에도 오홀리압이라든가 이름이 밝혀 지지 않는 다른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이 성막을 만드는 일에 참여를 했고 브살렐과 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서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모세나 아론같은 자켄들은 그들을 진심으로 격려했고 되어 가는 일에 감동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노인과 젊은이가 함께 이루어 가는 것이 성막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지금도 모든 세대가 어울리며 합력하여 감당해 가야 합니다.

교회는 어느 나라에서나 우파로 흐르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걸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만약 우로나 좌로 치우치면 공의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치우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 말씀 위에 열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구세대는 신세대를 받아주고 신세대는 구세대를 믿고 존경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구세대가 먼저 아량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구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세대를 뛰어넘는 영원한 진리가 빛을 발하게 해야 합니다.

여자들

모세의 이야기 가운데서 인구조사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남자 장정의 수만 세이 되는 보게 됩니다. 여자들은 인구에 포함이 되지 않았습니다. 여자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아마도 이집트의 영향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여자들 이야기가 참으로 많이 나옵니다. 사라, 리브가, 레아, 미리암, 십보라, 슬로브핫의 딸들이들은 모두 나름대로 시대적인 그리고 국가와 민족을 위한 중요한 일을 감당했습니다. 여자도 자켄으로 대접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여자들은 여전히 업신여김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시대의 속담에 여자가 말했다…” 있습니다. 여자가 말했다는 것은 그래서 믿을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법정에서 진술되는 여자의 증언은 법률적으로 인정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만행을 예수님께서는 단칼에 자르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28장에 중요한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여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여자들이 예루살렘 마가의 집에 모여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이후 예루살렘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여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겠지만, 예루살렘 사람들은 증거를 여자의 말이라면서 일축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소위 남자인 제자들은, 훗날 사도가 되었던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여자들의 말을 듣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갈릴리의 어떤 산으로 그들은 과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여자의 말이라고 무시했을 그들이었지만, 결국 그들은 여자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날 있었습니다. 이후 여자들은 예수님의 복음 전파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여자들 스스로 사도적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초대교회 때의 여자들의 활약상은 일을 다루어도 다루지 못할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 여자의 활약은 대단했습니다. 다만 기록을 하는 남자들이 간과해 버렸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아무튼하나님께서는 사회적 통념에 지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남자들이 여자를 무시한다고 해서 하나님까지 여자를 무시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가는 아주 중요합니다. 특히 안식일 또는 주일에 하나님 앞에 나가 예배 드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긴가민가 하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지만 제자들은 그걸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여자들의 증언을 들었지만 여자들의 말인지라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어떻게 죽은 사람이 살아날 수가 있어상식이 그들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여자들의 말을 어떻게 믿을 있어사내의 자존심이 그들의 의혹을 증폭시켰습니다. 하지만 결국 제자들은 여자들의 말에 따라서  갈릴리에 있는 어떤 산으로 갔습니다. 어떤 산인지 구체적으로 우리는 없습니다. 아마도 산상수훈을 반포하셨던 가버나움 뒷산이 아닌가 합니다.

어떤 산에 모인 제자들 앞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명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들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제자들이 긴가 민가 했다고 합니다. 하급 제자들만 긴가 민가 했다는 아닙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같은 제자들도 긴가 민가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해서 대단한 사람들이겠습니까? 수제자 중의 수제자라고 하는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수탉은 베드로의 수치의 상징입니다. 그런 부실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지상최대의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그리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어라, 그리고 명령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은 완벽하게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지상최대의 명령을 내리신 아니었습니다. 허세가 가득하고 마음에 의심이 가득한 남자들에게 지상최대의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헛점투성이였던 제자들을 보면서 용기를 있습니다. 저런 사람들도 사도로 선택이 되었으니 나도 희망이 있는 아닐까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있어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보다 먼저 일주일에 하루를 쉬는 것부터 우리의 신앙 생활을 시작합시다. 일주일 내내 일하라는 것보다 쉽지 않습니까?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바칠 있도록 노력합시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브살렐을 거쳐 자켄으로 변해 것입니다. 긴가 민가 했던 우리의 신앙도 하나님을 대면하게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처럼 확고한 신앙인이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후손에게도 가르쳐야 합니다. 과거에는 몰랐지만 지금 알게 되었으니 미래는 신앙으로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원하고 계십니다.


 

모세는 양 손에 십계명 판을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 오다가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에게 경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들을 박멸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멸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우상숭배를 한 자들만 멸하시라고... 이후 모세는 사파이어로 돌 판 두 개를 만들어서 다시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또 40일 동안 머물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파이어 판에 다시 십계명을 새겨 주셨습니다. 모세는 티슈리 10일에 시내 산에서 내려 왔습니다. 욤 키푸르, 즉 속죄일입니다.

복음, 미쉬칸을 지어라

티슈리 11일, 그러니까 욤 키푸르 즉 속죄일 다음 날이었습니다. 모세가 우상숭배자들을 박멸한 후 사건은 진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록 용서를 해주시기는 했지만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떨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모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무서운 죄를 용서 해 주셨다는 것과 하나님꼐서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쉐키나가 임재할 장소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 장소를 '미쉬칸'이라 합니다. 미쉬칸을 어떻게 지을 지, 거기에 무엇을 어떻게 두어야 하는 지...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이미 하나님께서 시내산 꼭대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때 처음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말을 듣고 감격했습니다. 가슴 속에 끓어 오르는 흥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니... 그들은 모세가 말하는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시행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모세는 미쉬칸을 짓는 일은 아주 거룩한 일이지만 그렇다 해도 안식일에 그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일렀습니다.

미쉬칸과 안식일, 그 커넥션

그렇다면 안식일에 우리는 미쉬칸에서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나요? 미쉬칸을 만들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39가지의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것을 '아보트 멜라코트'라고 합니다. '일의 주요 분야들'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안식일에는 이 39가지의 일들이 금지되었습니다. 이 39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씨뿌리기 2) 밭갈기 3) 거두기 4) 다발 묶기 5) 타작하기 6) 까부르기 7) 고르기 8) 갈기 9) 체질하기 10) 반죽하기 11) 빵굽기 12) 양털깎기 13) 양털빨기 14) 양털두드리기 15) 양털염색하기 16) 잣기 17) 양털짜기 18) 두개 이상 고리 만들기 19) 두 올 이상의 실로 짜기 20) 두 올 이상 나누기 21) 묶기 22) 풀기 23) 두 바늘 이상 꿰매기 24) 찢기 25) 짐승잡기 26) 짐승죽이기 27) 가죽벗기기 28) 고기 절이기 29) 무두질하기 30) 가죽 마르기 31) 가죽 자르기 32) 두 글자 이상 쓰기 33) 두 글자 이상 지우기 34) 집짓기 35) 허물기 36) 불끄기 37) 불붙이기 38) 망치로 때려 열내기 39) 사적 공간에서 대중적 공간으로 물건 나르기 또는 대중적 공간에서 물건 나르기.

만약 어떤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에 이 멜라코트 가운데 하나를 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이 사실을 고발합니다. 그러면 베이트 딘은 돌로 쳐 죽이라는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우발적으로 이런 일을 했으면 코르반 ㅋ하타트 즉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필요한 물건 수집

모세는 미쉬칸을 짓기 위해 백성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가져 오라고 했습니다. 금, 은, 구리, 파란 빛이거나 보라 빛이거나 붉은 빛 물을 들인 털실, 좋은 린넨, 염소의 털, 붉은 양의 가죽, 타ㅋ하쉬의 가죽, 슅팀 나무, 올리브 기름, 향품, 보석들... 그러나 개인 할당을 하지 않았습니다. 목적에 맞게 내고 싶은 사람이 내되 원하는 만큼 가져오면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물품이 모이자 미쉬칸을 만드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모세는 창고로 쓸 텐트를 쳤습니다. 그 방향은 사람들이 만나를 거두어 먹는 쪽이었습니다. 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품들을 들고 미쉬칸으로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세에게 인사를 할 것입니다. 모세가 얼마나 즐거웠을까요? 모세는 물품을 접수하는 팀을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 매일 얼마나 물품이 들어왔는지 조사 하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모세는 12 지파에게 각각 사람들을 보내서 미쉬칸을 만들기 위해 물품을 바치도록 뿔 나팔을 불어 알리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쁨과 환호 속에 물품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오직 12 명만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12 지파의 족장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물품을 내고 모자라면 그 나머지를 모두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놀랍게도 모든 것이 충분히 기증되었습니다. 다만 대제사장의 가슴에 붙일 12개의 보석들과 여분의 향품과 올리브 기름이 기증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족장들은 이런 물품들만 기증하면 되었습니다.

앞에 선 소년

미쉬칸 건축 책임은 베트짤렐이 맡았습니다. 베트짤렐은 오홀리아브를 조수로 고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밖에도 솜씨 좋은 남자들과 여자들을 불렀습니다. 이들은 39가지 일들을 맡아 처리했습니다. 베트짤렐은 미쉬칸 안에 놓일 벱궤나 메노라 같은 성스런 도구들을 디자인했습니다. 법궤는 제1 성전이 무너지기 전에는 요쉬야후 왕 때 50년 동안 감추어 졌던 것을 제외하면 항상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제3 성전이 세워지면 어디선가 베트짤렐이 만들었던 법궤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모세는 제대로 일이 되어 가고 있는지 살펴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각각의 일을 맡은 사람들은 모든 것들을 모세가 시내 산에서 본 그대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 일은 3개월 동안 지속이 되었습니다.

 

질문과 대답

 

1) 오늘 파라샤는 출 25-31장의 명령을 실천한 것입니다. 실천의 내용이 명령의 내용과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 다른 것이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성막 짓는 작업은 언제 시작했으며 언제 끝났습니까?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3) 성막과 그 안의 기물들을 직접 제작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어떤 자격을 갖춘 사람들입니까?

4) 예물을 바치는 기본적인 마음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5) 교회에서 다다익선이 덕목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성막의 모습을 그려 보고 그 의미를 서로 말해 봅시다.

7)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웃 덮개를 만든 이유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경건과 함께 필요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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